여행의 묘미는 발견이지

#25. 유전은 못 속인다

by 수현

2011년에 엄마, 이모와 함께 스페인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지난 포스팅에서 작성했던 '바나나 사태'가 일어난 그 여행이다. 사실 23일간 불화는 단 한번뿐이었고 나머지는 다 좋았다. 어르신들과의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내가 모든 걸 책임진다는 느낌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역시나 여행은 늘 새로운 걸 발견하게 만든다. 여행하는 장소와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발견.


갓 취직했을 때라 돈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나는 최소한의 경비로 여행을 하고 싶었다. 급하게 비행기 티켓팅 하느라 인당 140만원을 썼기에 숙박에서 최대한 아껴야 했다. 유럽 여행은 처음이어서 배드 버그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나흘 정도를 제외하곤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두분도 해외에서 신나는 경험을 하면 좋아하실 거라는 순진한 생각에 어르신들의 연세는 고려하지 않았다.


처음에 바르셀로나에서 묵은 호텔과 마드리드의 한국인 숙소는 괜찮았다. 방이 좁긴 했지만 깨끗하고 조용했다. 당황스러웠던 건 다음으로 방문한 그라나다의 게스트하우스부터였다. 이곳은 다른 여행객들과 방과 샤워실을 셰어 하는 곳이었다. 나는 어르신들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사진이랑 너무 달랐다.) 해외까지 와서 고생하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입이 안 떨어져서 혼자 쭈뼛거리고 있었는데 의외로 엄마가 이런 경험 처음 해본다며 너무 신난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이모는 해외여행 경험이 많아서 이런 건 다 겪어봤다고 하셨다.) 엄마가 괜히 내가 신경 쓸까 봐 그런 말씀을 하신 건가 싶기도 한데 엄마의 표정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새로운 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신기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소녀 같았다.


엄마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바로 이런 개방성이다. 새로운 걸 탐구할 때마다 눈이 빛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소개해주는 입장에서 내가 더 뿌듯하다랄까. 엄마는 나보고 매번 무모하다고 하지만 새로운 걸 추구하면서 히말라야 다녀오고 창업을 3번이나 시도한 걸 보면 이런 면에서는 엄마를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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