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자유여행은 안 하겠다

#27. 여행의 기억

by 수현

재작년 이맘때쯤 엄마 환갑 기념으로 둘이서 일본 여행을 갔다. 여행 전에 독일로 출장을 다녀와야 해서 매우 바빴기에 사실 비행기 티켓만 끊어 놓고 스케줄을 제대로 짜지 못했다. 둘 다 일본 여행은 처음이고 일본어를 하나도 몰랐기에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최근에 엄마에게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였다고 물었다. 교토에서의 숙소가 좋았고 근처 절에 갔던 게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오사카는 별로였다는 뜻이다.) 특별히 엄청 좋다기보다는 그냥 함께하는 여행이라 그 자체가 의미 있다고 하셨다.


일본을 가면 꼭 교토에서 두부요리를 먹고 싶었기에 오사카-교토 루트를 잡았다.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아서 여행 날짜가 다가오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첫날 오사카 숙소에 도착해서 근처 시장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즉흥적인 여행의 묘미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설득하여 따로 맛집을 찾아보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밥처럼 생긴 거 하나에 튀김,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무거나 나와도 다 맛있게 먹을 줄 알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녹차물 같은 것에 밥이 들어있었다. 비주얼은 그렇다 쳐도 너무 짜고 익숙지 않은 맛이었다. 튀김은 너무 기름졌다. 맥주가 제일 맛있었다.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명동 시내와 비슷해 보였다. 첫날의 일본은 실망 가득이었다.


다음 날 교토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효율적으로 지어진 각양각색의 집을 보았다. 일본 영화에서 자주 봤던 느낌 있는 풍경이다. 점점 들어갈수록 시골 느낌이 나고, 90년대 영화에서 봤던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사람 구경을 하며 아라시야마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은 거기 다 모였는지 인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 원래는 두부요리를 먹고 싶었지만 사람 많은 곳에 가자는 엄마를 따라 뷔페식당에 들어갔다. 일본 요리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암만 먹어도 내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걷고 시장 가서 또 걷고 도후쿠 지역에 있는 숙소에 돌아갔다. 오사카 숙소의 10배 정도 되는 크기에 욕조도 있는 곳이었다. 엄마도 이제껏 함께 여행하면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던 숙소라고 말씀하셨다. 근처에 식당이 없는 외진 곳이어서 편의점 라면과 맥주를 마셨는데 이제껏 먹은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이제껏 식당을 잘못 고른 게 분명하다. 마지막 날은 비행기 타기 전에 근처 절에 갔다. 절에서 형형색색의 단풍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이 절이 참 좋았다고 했는데 나는 사실 잘 기억나질 않는다. 비가 추적추적 오던 소리만 남아 있다.


2박 3일 간 제대로 준비를 못 한 딸 때문에 고생을 하셔서 그런지 이제는 자유여행을 안 가겠다고 선언하셨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성에 있다고 고집하고 있는데 엄마는 이제 힘들어서 안 되겠단다. 마지막 자유여행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다음에는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행복한 것만 기억하실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서 제안해 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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