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면 편해져요

#42. 엄마와 언니

by 수현

언니가 필리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얼굴 안 보고 사는 게 익숙해서 안 보면 또 그러려니 하다가도 보면 너무 좋다. 아마 한 두 달 뒤에는 일하러 다시 외국으로 나가겠지만 그때까지는 많이 보고 잘해줘야지. 언니는 좀 독특한 일을 한다. 뭐라 설명하기 좀 애매할 수도 있는 일. 언니의 말에 따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이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엄마는 언니가 하는 일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어서 싫다고 했고,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싫다고 했고, 해외로 계속 왔다 갔다 해서 결혼을 못하니 싫다고 했다. 그중에 뭐가 가장 싫은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한때 엄마는 언니는 연락도 안 하고 살았다. 언니는 엄마가 이해해주지 못하고 화만 낸다고 연락하는 걸 꺼려했고, 엄마는 그런 언니가 싫다며 먼저 연락을 거부했다. 나는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엄마가 물어보라는 걸 언니한테 물어봤고, 언니의 입장을 대변해주며 중간 역할을 했다. 나는 언니가 하는 일이 싫은 게 아니라, 언니가 외국에 나가 있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가족 모임에도 허전함이 느껴지는 게 별로였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데 어쩌겠나 싶었다.


언니가 거의 5년 만에 호주에서 한국에 돌아온 뒤 우리의 관계는 많이 변해있었다. 그동안 입 꾹 다물고 말하지 않던 엄마는 더 이상 언니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무심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쓰지 않던 나는 언니의 존재가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알게 되었고 언니한테 더욱 잘해주려 노력했다. 필리핀에 잠깐 갔다 돌아온 후 언니는 올해 내에 유럽으로 떠난다고 했다. 엄마는 '응 알았어'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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