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다고 같이 하는 건 아니다

#42.

by 수현

습관이란 건 세우긴 어려운데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매일 같은 시간, 하나의 의식처럼 행하던 것들이 있다. 그런데 언니와 엄마가 집에 와서 일주일을 같이 있으니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의식의 고리가 끊어지니 일주일은 편히 그냥 쉰다는 마음으로 신경 안 쓰고 지냈다.


가족이 함께 있어도 같이 뭔가를 하진 않는다. 나는 세 명이서 다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서로의 취미가 동일하지 않아서 실패했다. (저번에 할 땐 좋았는데 말이다) 엄마와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영상을 보는 취미가 같아서 그건 계속 같이 할 수 있다. 평일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엄마와 함께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넷플릭스에서 '버드 박스'를 보고 난 후 왓차플레이에서 '의천도룡기 2019'를 봤다. 그 시간에 언니는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고 왔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따지면 함께한 시간이 길어도 활동을 같이 하진 않는다.


잘 시간이 되어 불을 끄면 정적 속에서 우린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엉뚱한 것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어릴 때 정전이 되면 촛불을 켜고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여행 가서 텐트 안에 누워 자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눌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 우리는 같은 곳을 보며 온전히 서로의 말소리와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그 짧은 순간이 참 좋다. 만약 핸드폰과 노트북이 없다면 그런 시간을 더 많이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같이 여행 가면 그런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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