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노트 (2) 마음챙김 달리기
올해 여름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몇 차례 동네를 달려보니 반복하여 즐겨 달리는 경로가 생겼고, 창릉천 상류 일부 지점을 반환하는 8km, 11km, 13km 전후쯤 되는 세 개의 주로 중 하나를 선택하여 뛴다. 창릉천은 북한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으로 천의 상류는 북한산성 자락 인근에 위치해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 맑은 공기 속에서 뛰다 보면 숨이 차오르기 마련인데, 깊은 호흡으로 숨 틔우기를 수백 차례 반복한다. 깊은 호흡으로 깨끗한 공기를 하복부 깊숙이 들여 마시고 뜨거운 열정을 담은 숨으로 강하게 내뱉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쾌감은 달리기를 지속하게 한다.
천길의 주로의 상태는 비교적 잘 포장되어 있어 평편하고 파여있거나 모난 데가 없어 뛰기 좋다. 그런데 주로의 주변 환경이 잘 정돈된 것은 아니다. 주로의 일부는 이름 모를 풀들이 내 키보다 더 높게 무성히 자라나 있는 곳도 있고, 북한산 부근 밤 시간의 어둠은 생각보다 짙으나 주로를 따라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야간에 달릴 때면 보행자 도로 옆 자전거길 유도등 불빛을 따라가거나 약 1km 거리마다 천을 가로지르는 교량의 전등빛에 의존해야 한다.
주변 환경이 잘 정비되어있지 않아 재밌는 지점이 몇 가지 있는데, 풀숲에 가려 어둠이 짙어진 주로는 원초적인 불안을 유도하고 고요함 탓에 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러면 숲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나를 덮칠 것 같은 예민해진 감각과 심장의 두근거림이 유난히 커진 발소리와 합을 이루는데, 이때는 내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도망치는 모양새다. 동시에 몇 가닥 삐져나온 풀들이 내 정강이와 팔들을 스칠 때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소스라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나는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서 실소로 바뀐다. 그렇게 무성한 풀숲을 지나면, 길게 자라난 풀들을 멀끔히 잘라낸 잔딧길이 창릉천과 함께 이어진다. 그 길을 뛰다 보면 3호선 열차가 차창 밖으로 새하얀 빛으로 어둠의 주로를 밝게 밝히며 흠씬 땀에 젖은 나의 옷가지와 신체를 반짝반짝 훑고 창릉천의 물비늘을 일으킨다. 열차 바퀴와 궤도가 마찰하며 내는 쇳소리가 나를 향해 점점 커지는데, 지칠 대로 지친 뜀박질에 힘을 좀 내라고 응원해 준다.
이렇게 나는 홀로 달리고, 외롭지 않다. 생물과 무생물이 보내는 신호에 나의 감각과 감정이 반응함을 알아차리며 살아있음을 생생히 경험한다.
우연히 이 동네에 오게 되었고, 주로를 발견했고, 그 길을 반복해서 달린다. 그곳과 상호작용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달리기의 끝, 몰아치는 거친 숨을 내쉬고 깨끗한 공기로 가득 채우기를 반복하며 감사와 만족을 느낀다. 나는 이 길이 마음에 들고 달리기가 즐겁다.
뛰기 전부터 무더워 가벼운 차림새의 여름의 달리기는 이제 제법 추워져 강제로 옷가지들로 몸을 감싸줘야하는 겨울의 달리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 달리기 또한 새로울 것이다. 우연히 내게 주어진 이 길을 달리며, 사계절의 변화와 나의 경험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삶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