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CLASS에 연재한 컬럼입니다.
펜을 잡을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 나는 왜 골머리 아픈 일을 이리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10월의 칼럼 마감 이틀 전, 머릿속 태풍이 휘모리장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글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진지하기만 한, 위트 없는 글. 꼭 그달의 주인을 닮았다. 아, 이번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나. 떠오르라는 짜릿하고 찌릿한 글감은 고사하고 배가 슬며시 고파온다. 에라, 모르겠다. 낙서만 끄적이던 종이를 책상 구석에 던져놓고 밥부터 먹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었다. 추석 연휴의 끝, 다시 서울로 향하는 딸의 가방에 슬며시 넣어준 멸치볶음이 보인다. 엄마는 다 큰 딸내미가 타지에서 배곯을까 봐 늘 걱정인가 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선언한 후로 안부 전화의 시작과 끝이 항상 똑같다. “밥은 먹고 다니니? 밥 잘 챙겨 먹어라.”
즉석 밥을 꺼내 들었다가 엄마가 해준 갓 지은 밥맛이 그리워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엄마의 잔소리를 잊지 않고, 잡곡도 조금 섞어서. 오랜만에 가동되는 전기밥솥이 증기를 내뿜는 동안,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달걀을 톡.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프라이를 구워낸다. 앉은뱅이 밥상 위에 쌀밥, 달걀 프라이, 배추김치, 김, 그리고 멸치볶음이 함께 앉았다. 엄마의 비법 소스로 만든 멸치볶음과 달걀 프라이를 밥에 올려 슥슥 비벼 한 숟갈 크게 떴다. 김치와 김을 곁들여 입에 넣자,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입에 퍼졌다.
엄마, 배고파요
밥때가 되면 언제나 가지런히 차려진 밥상의 노동을 독립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엄마 밥 주세요.”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배고파요.” 말 한마디에 뚝딱 생기는 따스한 밥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나에게 ‘엄마’가 마법의 단어라면, 엄마에게는 수고로움이라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퇴사 후, 한동안 부모님 집에 머물렀다. 그때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이름 있는 회사를 제 발로 걸어 나와 여행 작가를 해보겠다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던 딸의 모습이 엄마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엄마 나이의 여성분들은 모이기만 하면 자식 자랑 토너먼트를 펼친다는데 그곳에서 엄마는 큰딸의 스토리로는 예선도 통과 못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딸의 자존심이 행여나 다칠까 봐 엄마는 내가 집에 머무는 동안, 그 많던 잔소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그리도 많은 윤 여사가 앞으로 딸이 뭘 하고 살 것인지 수없이 묻고 싶었을 터인데 어찌 참아냈는지(아직도 미스터리다).
대신 엄마는 나와 함께 걷기로 한 모양이다. 고민이 많은 얼굴이나, 상심한 모습이 포착될 때면 집 뒤의 산을 함께 오르자고 이야기했다. 그날도 내 표정이 어두웠는지 등산복을 가만히 건네며 날씨가 좋으니 걷자고 했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길을 걸으며 엄마는 무뚝뚝한 딸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엄마, 선정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아야 했던 소녀의 이야기. 자식들은 부족하지 않게 키우기 위해 맞벌이를 해야 했던 선정의 이야기. 엄마는 따스한 양손으로 내 두 손을 꼭 잡고는, 엄마가 딸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딸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 수 있을 만큼 엄마가 부자라면 딸이 이토록 괴롭지 않아도 될 텐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고.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나쁜 딸이다.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하실 만큼 얼굴빛 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세상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도 특히 부모님 앞에서만은 내색하지 않는다. 대신 그날의 오후를 떠올리며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내야 한다’를 주문처럼 외우는 버릇이 생겼다.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부모님의 눈으로 보기에 나는 ‘모호’ 그 자체이다. 그 흔한 직업명도 없다. ‘액션건축가’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겨우 일 년에 한 권 적어내는 책과,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이 글로 부모님은 나의 생을 들여다본다. 무뚝뚝한 나도 종이 위에서만은 꽤 수다스러우니 다행이다.
이제 알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밥상을 치우고, 다시 책상에 앉아 펜을 들었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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