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아가 되었다는 순간을 느낀 짜릿함.
나는 기독교 계열의 모태신앙 집안에서 자라나서 어렸을 때부터 성경에 나오는 유일신 사상을 강요받았다. 동시에 우리 부모님은 나와 동생에게 과학전집이나 여러 다양한 책들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주로 과학 전집을 보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가 이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나오는 인류의 역사는 과학책에서 나오는 지구의 탄생이라던가 공룡시대와는 맞지 않았다.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불확실한 신의 존재보다는 확실한 공룡 화석을 더 믿는 아이가 되었다.
많은 아이가 그렇듯 나도 어른이 되어서는 부모님이 바라는 것들과 상관없는 나만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부모는 작고 세상은 크다. 그리고 20대가 넘어서는 사실상 무신론자로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강요받은 종교관 때문에 한편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유일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마음속 30% 정도는 어떤 기독교적인 신이 근엄하고 조금은 변태적이고 지루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은연중에 생각하며 살았다. 나 같은 시시한 인간을 하루종일 지켜보는 신의 표정은 분명 지루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중에 보게 된 책이 리처드 도킨슨의 그 유명한 '만들어진 신'이었다. 싱가포르를 포함, 외국에서 5년 살면서 한국어로 된 글들이 그리워서 한국 책들을 많이 봤는데 그중에 하나였다(총 균쇠 도 그때 보았다). 책을 보면서 나는 점점 내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던 '신'이라는 존재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든 인도에 있는 3억 명이 넘는 신이든 존재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사실을 책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책을 보던 어느 기간 중, 점심을 먹으러 싱가포르 '티옹바루'의 쇼핑센터로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유일신'이라는 존재가 없다는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받아들였다. 삶의 목적 따위는 없다. 나와 우리 인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그냥 우연히 발생한 사건일 뿐이다. 사후 세계 따위도 없다. 죽으면 끝이다. 자,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적도의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싱가포르의 어느 신호등을 걸으며 나는 영감과 깨달음을 받았다. 다. 세상에 대한 공포를 미신과 종교라는 간편한 오역으로 해석하던 중세인이 과학과 관찰, 발견을 통해 불확실한 동굴밖으로 나오면서 근대인이 되는 뭐 그런 순간이랄까.
나는 내 마음속에 있던 기독교적 유일신의 망령을 지웠다. 고아가 된 느낌이 들면서 잠깐 무서웠지만 무서움만큼 짜릿했다.
진화론과 과학, 무신론을 통해 반대로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99.99% 무신론자가 되는 순간의 환희를 아마도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이든 리처드 도킨슨이 말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든 뭐든 말이다.
'만들어진 신'은 성경이든 이슬람이든 말하는 신이 있을 가능성이 '100% 없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런 신이 있을 가능성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신'이 있을 가능성과 같다는 말이다. 사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와 설화, 예술가들이 말해왔다. 스파게티 신의 존재를 알고 나서 나는 스파게티를 먹을때마다 경건함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