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홍콩의 화양연화, 혹은 춘광사설
내가 하는 최고의 덕질 중 하나는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고, OST를 듣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머니볼》을 보고 원작을 읽고(원작은 소설이 아니라 경영 관련 서적이다), 영화 음악까지 찾아 듣는 식이다.
비슷한 방식으로는 여행을 가서 그 지역의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이다. 작년에 두 번 출장으로 홍콩을 다녀왔고, 출장중에 여행을 조금도 못한게 아쉬워서 며칠 전에 잠깐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홍콩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왕가위도 있고 주성치도 있어서, 여행 이후 두 사람의 영화를 몇 편 다시 보았다. 그리고 여행 중에는 홍콩 관련 책을 읽었는데… 아뿔싸. 그 책은 어쩌면,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우산혁명’에 대한 책이었다. 그 책을 다 읽고 조슈아 웡이 쓴 책도 한 권 읽고 있고,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멘터리도 보았다.
몇 년 전 뉴스와 팟캐스트에서 대충 보고 듣고 잊고 있었지만, ‘우산혁명’은 홍콩 인구의 30%, 약 2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거대한 시위였다.
결국 홍콩 사람들이 외친 것은 1987년에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대통령 직선제’와 본질적으로 닮아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쟁취해냈고, 홍콩은 실패했다.
그리고 ‘실패한’ 혁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쓸쓸함이 남는다. 오래, 가슴 아리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넓게 보면 6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홍콩인들이 누렸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비슷한 사상의 자유’는 아편전쟁과 영국의 식민 지배라는 뒤틀린 역사가 남긴 상흔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특히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더 그렇다. 그런데 그곳에서 누리던 사상의 자유를 ‘조국’의 품으로 돌아간 뒤에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아이러니는 결국 반기와 혁명을 불렀다.
조슈아 웡을 비롯한 몇몇 주도자들은 지금도 감옥에 있다. 신념을 바쳐 인생의 가장 꽃 같은 순간을 불살랐고, 잠시나마 수백만 명이 그들의 편에 섰다. 그때 느꼈던 환희와 감격은 수년의 감옥 생활과 맞바꿀 만한 것이었을까. 그 순간은 화양연화였을까, 아니면 춘광사설이었을까.
이번에 오랜만에 홍콩을 여행하면서, 내가 알던 홍콩은 영화 속에만 남아 있고 현실에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노란 우산이 마지막으로 홍콩을 재현하려 했지만, 결국 우산은 강풍에 날아가 버렸다.
성공한 혁명의 나라에 사는 나는 얼마나 복에 겨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