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약을 복용하는 기간 동안 휴대폰 알람을 하루에 두 번 맞춰놨다. 오전, 오후 한 번씩. 하루에 1회 복용인데 알람을 두 번 맞춰놓은 이유는 오전에 못 먹었을 때 까먹지 말라고 추가로 해놓은 거다. 먹은 걸 혹시 까먹을까봐 약을 먹은 다음에 약 봉지에 날짜를 적어놨다. 슬프지만 서른 이후로 내 기억력을 이 정도로 신뢰하지 못한다.
해가 바뀐 1월 18일까지 약을 복용했다. 그리고 약 복용이 끝나자마자 생리가 시작했다. 병원에서 오라고 한 날이 아슬아슬하게 설 연휴랑 겹칠 거 같아서 연휴 전날에 다녀왔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이번 생리 때서 두터운 자궁벽도 같이 떨어져나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날따라 의사는 초음파를 유독 자세히 봤다. 내게 화면으로 근종에 혈류가 돌고 있는 걸 보여주면서, 조직 검사를 권했다. 덧붙여 내 얼굴이 창백한 걸 보고 빈혈이 심하면 미레나(루프)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미레나는 피임기구로 잘 알려져 있다. 이걸 하면 생리를 하지 않거나 생리 양이 줄어든다고 해서 나처럼 생리양이 과다한 사람들한테 치료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나는 선근증이 있어서 치료로 쓰는 거라 보험이 된다고 한다.
결국은 첫 번째 병원에서 들었던 거랑 같은 얘기다. 원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그래도 처음 들었을 때보다 충격은 덜 했고, 더 침착하게 반응했다. 차분하게 의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일단 혈액검사를 먼저 해야한다. 조직검사를 하려면 자궁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질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면 먼저 혈액검사를 해야한다. 혈액검사는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린다. 혈액검사 후 이상이 없으면 조직검사를 진행한다. 조직검사는 수면내시경처럼 10분 안에 끝날 정도로 간단하지만 전신마취를 해야하기 때문에 수술이라고 한다.
가족들과 얘기 후 혈액검사를 하겠다고 말하고 병원을 나왔다. 첫 번째 얘기를 들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인터넷을 통해 차분히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비슷한 경험을 한 블로거들의 후기가 도움이 많이 됐다. 미레나 시술까지 마치고 잘 살고 있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위로를 얻었다. 나도 건강해져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