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 일기 (6)

수술 전

by dore


2월 3일. 전날 밤. 10시부터 금식해야 한다. 물도 안 되고, 껌도 안 된다. 잠자리에 들어간 건 12시 이전이었는데, 잠든 건 다음 날 새벽이었다. 생각이 많은 것도 병이다.


2월 4일. 당일 아침이다. 9시 30분까지 병원에 가기로 해서 엄마와 집을 나섰다. 이 나이에 엄마와 병원에 간다는 게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오늘은 마취까지 하니깐.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호기롭게 어차피 나는 여기 6시간을 있어야 하니 엄마는 중간에 집에서 쉬다가 오라고 했다.


병원 데스크에 가니 접수원이 혈압, 몸무게를 잰 다음 적어서 알려달라고 했다. 원래 저혈압이긴 한데, 처음에 최고혈압이 99가 나와서 다시 쟀다. 굶어서 그런가 운동화까지 신었는데 몸무게가 59kg가 나왔다. (참고로 나는 인생 대부분을 과체중으로 살아왔다...) 화장실에 가서 입고 오라던 압박 스타킹을 신었다. 들어가려던 칸에 웬 할머니가 문도 안 잠그고 볼 일을 보고 있길래 깜짝 놀라 문을 닫았다. 옆 칸에 들어가 압박 스타킹을 꺼냈는데, 신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발이 커서 그런가 발등을 넣을 때부터 스타킹이 뻑뻑했다. 과연 이 스타킹이 나한테 맞는 사이즈인가 의심스럽다. 어떻게, 어떻게 다리를 구겨 넣고 일어서니 무릎이 너무 쨍겨서 아팠다. 남정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통뼈인 내가 과연 M 사이즈 스타킹을 신어도 되는 것일까. 스타킹을 준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니 대수롭지 않게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L 사이즈는 80kg 넘는 사람들이 쓰는 거라며 그게 나한테 맞는 사이즈라고 말했다. 내 인생에 다시는 이런 걸 신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안에 들어가 지난번에 했던 혈액 검사 결과를 들었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10. 역시 평균을 밑 돈다. 빈혈약을 그렇게 오래 먹었는데, 여전히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래도 수술을 못 할 수준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비타민 D 수치가 결핍 수준이라 따로 처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사도 맞고 약도 따로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비타민 D가 부족한 경우 자궁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리고 산부인과 진료 의자에 앉아 자궁 경부를 확장시키는 약을 투여했다.


진료실을 나와 병원 한쪽 구석에 있는 사람에게 비타민 D 약을 샀다. 괜히 비싸게 산 게 아닐까 싶어 걱정했는데, 검색해보니 오히려 인터넷 최저가보다 가격이 싸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에도 여기 와서 사야 하나. 참을 수 없는 이 얄팍함이여.


직원이 집에서 서명해 온 수술동의서를 확인하더니, 7층 입원실로 가라고 했다. 7층 간호 데스크에 가니 간호사가 다시 혈압을 측정했다. 그리고 3인실 병실로 안내했다. 그곳은 당일 입원한 환자들만 사용하는 곳인지, 문에 이름표조차 없었다. 나 말고 아주머니 한 분이 먼저 병상을 차지고 하고 있었는데, 전화 통화를 들어보니 이 곳에 사시는 분이 아닌 거 같았다.


입원실에 들어온 건 대략 10시 30분 정도. 입원복으로 갈아입으니 간호사가 와서 수액을 링거로 놔준다. 간호사가 한 번에 혈관을 찾지 못해서 바늘을 두 군데나 찔렀다. 그래도 아무 소리 안 하고 잘 참아서 나는 내가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괜찮다고 했지만, 간호사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뒤이어 비타민 D 주사와 근육 주사를 맞았다. 근육 주사는 항생제였던 거 같다.


2시간 동안 엄마랑 앞에 있는 TV를 보다가 졸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나와 같은 병실을 쓰는 아주머니가 제모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주머니는 나보다 30분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신단다. 내심 '나도 제모를 해야 하는가.' 생각이 들면서 바짝 긴장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나의 생식기를 타인들에게 스스럼없이 공개해야 한다 게 참 껄끄럽다. 그래서 산부인과마다 '여의사 보유'를 강조하는 모양이다. 중간에 간호사가 링거에 항생제를 추가했다.


12시 20분. 수술실에 들어가기 10분 전이다. 간호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 수술실까지는 걸어서 내려가고, 올라올 때는 침대로 올라온다고 했다. 수술실은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3층에 도착하자마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 여기는 분위기가 정말 다르구나. 차갑고, 으스스하다.


머리에 파란 수술용 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나 나를 수술실 안으로 데려갔다. TV에서나 보던 분만 의자와 의자 위 커다란 전등을 보고 겁이 났다. 삼십 년 넘게 살면서 맨 정신으로 수술실 들어온 건 처음이다. 여태 내가 받은 수술이라고는 라식수술이 전부였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운 좋은 인생이었다고 해야 하나.


분만 의자에 앉으니 사람들이 수술실 사람들이 준비를 시작했다. 눈 앞에 파란천을 세워 내 시야를 차단시켰고, 입에는 산소호흡기 같은 걸 갖다 댔다. 양 팔은 의자 옆에 묶였다. 양 쪽 다리는 쫙 벌린 채로 팬티스타킹 형태의 녹색 천을 씌웠다. 얇은 원피스 입원복 하나 입고 수술실에 굴욕 자세로 있으려니 추웠다. 게다가 예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의사가 오지 않아 한참을 그 자세로 있어 허리도 아팠다. 갑자기 사람들이 내 생식기 쪽에 뭔가를 하려고 했다.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마취? 소독?을 한다고 했다. 내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자 그 사람들도 포기했다. 내가 곯아떨어진 다음에 하기로 한 모양이다.


나는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종아리, 허벅지, 생식기를 건드니 불안하고 불쾌했다. 몹시 예민해져 있었고, 수술실에 있는 상황 자체가 몹시 짜증이 났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 모든 게 끝난 상태이기를 빌었다. 얼마 후 의사가 들어오고 나는 곧 마취에 빠졌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자궁 일기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