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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현 Apr 26. 2023

엄마와 마지막 대화

엄마. 나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고 내일 가도 돼요?

 아이 한 명을 동네의 모든 어른들이 키운다고 생각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가끔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곤 했다. 그만큼 부모님끼리도 다들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의 자식을 하룻밤 정도 맡기는 데에는 문제없는 믿음이 있었다. 나도 친구네 부모님을 친 부모님처럼 생각했고, 친구네 부모님도 나를 친 자식처럼 대해주셨다. 물론 친구가 우리 집에 왔을 때에도 똑같았다. 


 “엄마. 나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고 내일 가도 돼요?” 오늘도 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엄마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고등학교 2학년. 18살 때였다.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기숙사에서 했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고향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항상 설레고는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엄마가 수술을 마치시고 회복 중에 계시던 때였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는 날이면 주말에는 항상 집으로 와서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참 이기적 이게도 그날은 친구들과 시간을 너무나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부탁을 엄마에게 한 거다. 그러한 미안함과 걱정을 잠시나마 덮을 정도로 어린 나는 즐겁게 그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눈이 떠졌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버스 간격이 1시간 정도 된다. 버스 시간이 안 맞으면 주변에 풀잎을 따거나, 비석 치기를 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끔은 그냥 걸어가는 날도 있었다. 평소에는 친구네 부모님이 해주시는 점심까지 먹고 집에 오곤 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은 방향에 친구와 먼저 나왔다. 아마 내 돈으로 택시를 타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을 거다. 당연하다. 그 어린애가 택시를 탈 돈이 어디 있겠나. 택시를 부른 건 아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택시나 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손을 들어 저 택시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엄마는 안방에 누워계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다. 그렇게 옆에 엄마를 두고 부자는 밥을 먹었다. 서로 대화가 없던 부자이기 때문에 그날도 안방엔 음식을 씹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버지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택시를 내 돈으로 타본 적도 처음인데,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마치 걸려서는 안 될 걸 나에게 걸린 것처럼, 아버지가 급하게 마당으로 뛰쳐나가셨다. 그 뒷모습을 보고 바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나의 시선은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이 엄마와 함께 있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의 눈물에는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금 알아야 한다고. 마당으로 나가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아무 일도 아니랜다. 이미 아버지의 몸과 마음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아니랜다. 그걸 나보고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역시나 나는 어렸다. 그냥 묻지 말고, 따라 나오지 말고, 밥이나 맛있게 먹는 게 더 잘한 행동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남겨진 밥상을 정리하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약을 받으러 병원에 다녀오신다고 했다. 나보고 엄마랑 같이 있으라고 했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나는 엄마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TV를 봤다. TV 한 번, 엄마 한 번. 누워있는 나의 몸과는 달리 내 눈동자는 바빴다. 그러던 중 엄마가 일어났다. “냉장고에 수박 깎아놨으니까 먹어” 방금 밥을 몇 숟갈 먹은 탓도 있지만, 뭔가를 먹을 입맛도 없었기에 이따가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엄마는 다시 잠드셨다. 그리고 나도 같이 엄마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 먼저 잠에서 깨서 아버지가 받아온 약 봉투를 다락에다가 넣어뒀다. 아버지는 바로 엄마가 있는 방으로 가셨다. 나도 약 봉투를 두고 엄마가 있는 방으로 갔다. 편안히 잠을 자고 계셔야 할 엄마와 그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앉아있어야 할 아버지가 분주했다. 스스로 업히지도 못하는 엄마를 엎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침에 보았던 눈물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도 하지 못한 채, 일단 엄마를 엎으실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어디 가지 말고,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니라,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집에 혼자 남겨졌다. 형은 군인이었기 때문에 형에게도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된 가고 있다는 직감이 드는데, 아닐 거라고 계속 마음을 잡았다. 형에게라도 전화할 수 있었으면 조금은 더 괜찮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에게 전화했다.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현실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 같이 내 마음이 요동쳤다. 친구에게 한 마디를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죽을 것 같아.” 그리고는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내 삶의 퍼즐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집 전화가 울렸다. 큰아버지였다. 큰아버지가 지금 집으로 올 테니,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약 몇십 분 동안 내 세상이 흔들리는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침착한 목소리셨다. 그렇게나 침착한 목소리로도 나는 조금도 그 영향을 받지 못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을까. 지나긴 한 걸까. 큰아버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고 나갔다. 큰아버지 차의 조수석에 탔다. 그리고는 출발했다. 엄마가 있는 곳으로. 수박은 냉장고에 그대로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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