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대출금 다 갚은 집에, 내가 없다면

[오늘의 희곡 처방] 쳇바퀴를 도느라 나를 잃어버린 직장인을 위해(음성)

by 허배우 actorheo

나는 한때 인생에는 순서가 있다고 믿었다.
서른 전에는 결혼하고, 서른다섯 전에는 아이를 낳고, 마흔쯤이면 삶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믿었다. 누가 정한 기준인지도 모른 채, 그 시간표를 잘 따라가는 것이 제대로 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도 나는 자주 오래 고민하지 못했다.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보다는, 그냥 남들처럼 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보다, 차라리 힘을 빼고 떠내려가는 편이 덜 아팠으니까.


그런데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이상한 질문이 찾아왔다.


정말 인생에는 다 정해진 때가 있을까.
정말 누구에게나 비슷한 생애주기라는 게 있을까.

열심히 살아 여기까지 왔는데도, 정작 나는 아직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다.
오래 살았는데도 나를 모른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직장인의 삶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요일만 기다리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를 버티고, 승진만 기다리며 오늘의 피로를 미뤄두고, 대출금을 다 갚을 날만 바라보며 지금의 삶을 견딘다. 우리는 늘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조금만 더.
이번 달만 더.
이것만 끝나면.


그 말로 오늘을 버틴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동안, 오늘은 자꾸 사라진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주 현재를 유예한다.


오늘을 사는 대신, 오늘을 견디면서 내일을 기다린다. 나의 오늘을 담보로 잡혀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사들이는 셈이다.


그 기다림의 끝에는 정말 우리가 원하던 것이 있을까.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는 오래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가족을 위해, 집 한 채를 위해,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온 윌리 로만. 그가 죽은 뒤, 아내 린다는 무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윌리, 오늘 집 대출금을 다 갚았어요. 오늘요.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네요.
우린 이제 빚도 없고 홀가분한데. 우린 자유인데...”

처음 이 대사를 읽었을 때 마음이 오래 시렸다.
그토록 원하던 날이 왔는데, 정작 그날을 함께 살아낼 사람은 없다. 빚은 끝났는데 삶도 함께 끝나버렸다. 자유를 얻었는데, 그 자유를 누릴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 장면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자화상처럼 보였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 미래를 위해, 안정된 삶을 위해 묵묵히 버틴다. 그렇게 버티면 언젠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문득 두려워진다.


대출금을 다 갚았을 때,
통장에 잔고가 쌓였을 때,
남들이 말하는 궤도에 올랐을 때,
그 삶을 누릴 나는 과연 남아 있을까.


대출금을 다 갚았는데
정작 그 안에 살 사람이 없다면.


나는 이 문장이 단지 죽음에 대한 비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은 살아 있는데 마음이 먼저 닳아 없어지는 삶도 있으니까. 해야 할 일을 하느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느라, 맡은 역할을 해내느라 정작 ‘나’는 점점 뒤로 밀려나는 삶. 오래 버티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인지, 언제 가장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삶.


그건 게으르게 산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성실하게 살아온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멈추지 못할까.


아마 겁이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익숙한 삶은 지루해도 안전하다. 월급이 들어오는 날짜, 반복되는 하루, 조금 지치더라도 예상 가능한 일상.

그런 것들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강하다. 사람은 때로 불행보다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한다. 그래서 낯선 자유보다 익숙한 권태를 붙잡고 있는 날이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금의 삶이 단순히 지루한 것이 아니라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분명한 신호다. 내 안에 다른 삶을 향한 마음이 자라고 있다는 신호. 더 늦기 전에 나를 돌아보라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묻고 있으라는 신호.


나는 밤을 좋아한다.


낮에는 늘 누군가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이 원하는 사람, 가족이 필요로 하는 사람,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 낮의 나는 자주 바쁘고, 자주 정확하고, 자주 쓸모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밤이 되면 조금 달라진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해야 할 일들이 잠시 멀어지고,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시간. 그제야 나는 겨우 나로 돌아온다.


세상은 아침형 인간을 좋아한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사람을 더 좋은 삶의 모델처럼 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표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는 아침에 또렷해지고, 누군가는 밤이 깊어질수록 비로소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낮 동안 세상의 시계에 맞춰 충분히 애쓴 사람에게 밤은 게으름의 시간이 아니다.


밤은 회복의 시간이고, 해방의 시간이고, 다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마흔이 넘어서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살아보고 싶어 졌다는 뜻일 수 있다고. 정답을 외우듯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비로소 내 질문을 시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나는 이제 나를 더 알고 싶다.


오래 미뤄두었던 질문, 나는 누구인가 앞에 다시 앉고 싶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조용히 인터뷰를 시작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견디지 못하며, 어떤 순간에 가장 나답게 살아 있는가.
이제는 남이 정해준 답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대답을 듣고 싶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로.


나는 언제 가장 편안한 사람인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나는 어떤 표정을 짓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가.


그 일은 돈이 되지 않아도, 쓸모없어 보여도 여전히 나를 끌어당기는가.


나는 무엇을 오래 견뎌왔는가.


그리고 그 견딤은 정말 내가 원해서였는가, 아니면 잃을 것이 두려워서였는가.


나는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작아지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러워지는가.


관계는 생각보다 정확하게 나를 비춘다.
나는 언제 부러움을 느끼는가.
부러움은 감추고 싶은 감정이지만, 사실은 내 욕망의 방향을 가장 솔직하게 가리키는 감정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하루를 좋은 하루라고 부르는가.
많이 해낸 날인가, 아니면 나답게 보낸 날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도 실망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한 번에 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매일 조금씩, 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과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하는 것을 구별해 가는 일에 더 가깝다. 결국 나를 안다는 것은 대단한 깨달음을 얻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이 자꾸만 향하는 방향을 오래 외면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대출금을 다 갚은 빈집을 마주했다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 남의 기준으로 채워 넣었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고, 이제는 정말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들로 내 삶을 다시 채워 넣으면 된다.


아주 거창할 필요도 없다.


퇴근 후 10분이라도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 오래 잊고 지낸 취향 하나, 이유 없이 좋았던 감각 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 하나. 삶은 그런 작은 것들에서부터 다시 살아난다.


그러니 오늘 밤, 거실의 불을 하나만 켜두자.
환하게 다 밝히지 않아도 된다. 작은 불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잠시 직급도, 역할도, 해야 할 일도 내려놓은 채 조용히 앉아보자. 책을 펼쳐도 좋고, 희곡의 첫 대사를 소리 내어 읽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다시 내 목소리로 말해보는 것.


대출금을 다 갚은 날,
그 거실 한가운데
가장 환하게 살아 있어야 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어야 하니까




[오늘의 희곡 처방]
1. 처방 희곡: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2. 주요 증상: 내일을 기다리느라 오늘을 유예하는 습관. 쳇바퀴를 돌리다 진짜 나를 잃어버린 듯한 서늘한 공허함.
3. 처방전: 유예된 삶에서 잠시 로그아웃할 것.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낮의 성실함은 안고 가되, 내 마음속 집이 텅 비지 않도록 매일 밤 10분이라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들여놓을 것. 타인의 시간표가 아니라, 나만의 리듬으로 다시 숨 쉴 것.
4. 복용법: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밤, 거실에 작은 불을 켜고 희곡의 마지막 ‘레퀴엠’ 장을 펼친다. 무덤 앞 린다의 독백을 내 목소리로 천천히 읽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본다. 나는 지금, 이 집에 살 사람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5. 보너스 처방:
린다의 마지막 독백 부분에 대해 허배우가 1인2역 팟캐스트처럼 녹음한 내용을 듣는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밤, 거실의 불을 하나만 켜고 천천히 들어보시길.
오늘을 유예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6. 허배우의 팟캐스트 1인 2역

#허배우 #actorheo #희곡낭독 #오피스드라마테라피스트 #직장인 #치유 #세일즈맨의죽음 #번아웃극복 #방구석허배우 #퇴근후9시나는방구석배우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희곡 처방]​​​죽는게 더 나은 경우는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