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차 직장인이 발견한 가장 우아한 마음 회복법

[구조를 읽는 감각] 희곡 낭독이 건네는 뜻밖의 선물(음성 포함)

by 허배우 actorheo

​어느 분야에 있든, 우리는 결국 무언가를 파는 사람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삶의 태도를 팔고, 직장인은 조직에 자신의 노동과 시간을 팔며, 연인은 상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판다.


22년 동안 현장의 최전선에서 ‘영업인’으로 살며 깨달은 사실은 하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무대에서 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전 생애적 영업인’이라는 점이다.


​영업의 본질은 단순히 물건을 건네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욕망과 자리를 조율하는 일, 즉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의 ‘구조’를 설계하고 흐르게 만드는 작업이다.


나는 이것을 [구조관계론]이라 부르기로 했다.


​※ 본 개념은 22년 차 영업인인 제가 현장의 치열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희곡 낭독을 통해 얻은 인간 통찰을 결합하여 최초로 정립하고 명명한 고유의 프레임워크입니다.


인간의 삶과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닌, 그가 놓인 ‘시스템의 구조’와 그에게 부여된 ‘자리’의 역학 관계로 해석하는 통찰의 기술이다.


​자리가 대사를 만든다: 인간은 자신이 앉은자리(직급, 역할, 환경)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말하고 행동한다.


갈등은 설계의 오류다: 관계의 충돌은 대개 사람의 나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부딪혀 일어나는 구조적인 막힘에서 발생한다.


​인식으로 해방된다: 내가 놓인 구조를 객관적으로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비난과 스스로의 죄책감으로부터 우아하게 해방될 수 있다.


​아무리 완벽한 인생의 계약이라도 관계의 경로 중 어느 한 곳이 꽉 막혀버리면 삶의 가치는 무너진다. 이것이 내가 ‘구조관계론’을 제안하는 이유다.


각자의 배역이 명확할 때는 삶이 순탄하게 흐르지만, 누군가의 배역이 흔들리거나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하면 인생의 도면은 순식간에 엉망으로 뒤엉키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 조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흔히 데일 카네기식의 ‘인간관계론’에 매몰되곤 한다.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미소 지으며,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22년의 현장은 다른 답을 주었다. 조직 내의 갈등은 대개 '사람의 성정'이 아니라 '자리의 충돌'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직장인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뿐인 인간관계론이 아니라 냉철한 ‘구조관계론’이다.


​인간관계론보다 구조관계론이 조직 생활에 더 적합하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죄책감의 제거다. 구조관계론은 갈등을 '시스템의 설계 오류'나 '배역의 불협화음'으로 객관화한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자리가 나에게 이런 연기를 강요하고 있구나"라는 인식은 개인을 조직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둘째, 행동의 예측 가능성이다. 조직 내의 인물들은 대개 자신의 '구조적 보상'에 따라 움직인다. 상대가 나를 공격하는 것은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대사일 확률이 높다. 구조를 읽으면 상대의 다음 행보가 보이고, 감정 소모 없이 대응 전략을 짤 수 있다.


​셋째, 지속 가능한 회복이다. 사람의 성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내가 놓인 '무대'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의 '연기 방식'을 조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퇴근 후 9시, 회사라는 무대를 객관화하고 나만의 새로운 구조를 설계할 때 비로소 진정한 안식이 찾아온다.


희곡은 인물 간 대화로 상황을 이해하는 분야로 구조관계론을 적용해 보는데 적합하다. 《바냐 아저씨》는 1~4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하이라이트인 3막의 도입부 번역문을 인물의 구조를 생각하며 낭독해 보았다.


(아래 오디오 파일은 직접 1인 다역을 맡아 녹음한 3막의 하이라이트다. 22년 차 영업인의 날 선 감각으로 해석한 갈등의 현장을 목소리로 담았다.)

바냐 아저씨 제3막: 관계의 엉킴을 읽다


​[상황]

평화로웠던 영지에 은퇴한 교수 부부가 내려왔다. 25년 동안 자신의 인생을 팔아 교수의 명성을 뒷받침했던 바냐와 소냐의 견고한 구조 속에, 가치를 만들지 않는 인물들이 침투한다. 22년 차 영업인의 눈에 이것은 전형적인 ‘관계의 정체 상태’이다.


바냐 (47세, 세레브랴코프 교수의 전처남, 영지 관리인): (마치 못 볼 꼴을 본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우리 위대하신 교수님께서 친히 하명하시길, 오늘 낮 1시에 전원 이 응접실로 집합하라는군요! (손목시계를 신경질적으로 툭 치며) 1시 15분 전. 온 세상에 대고 무슨 엄청난 중대 발표라도 하시겠답니다."


​옐레나 (27세, 교수의 젊은 아내):

"아마 무슨 용건이 있나 보죠."


​바냐:

(목소리를 확 낮추고 이 갈 듯이) "그 양반한테 일이 어딨소. 온종일 쓸데없는 글이나 끄적거리고, 투덜대고, 젊은 마누라 질투나 하는 거, 그거 말고 하는 게 뭐가 있소?"


​쏘냐 (20대, 교수의 딸, 영지의 실질적 살림꾼):

(바냐의 선 넘는 발언에 깜짝 놀라며) "삼촌!"


​바냐:

"미안, 미안해. 내 잘못이다. (옐레나를 손가락으로 까딱 가리키며) 저기 좀 봐라. 게을러 빠져서는 종일 비틀거리며 어슬렁거리기나 하고. 참~ 아름다우셔! 아주 훌륭해!"


​옐레나:

(바냐의 시선을 피하며, 극도로 귀찮다는 듯 차갑게 내뱉는다)

"당신(Вы)은 하루 종일 웽웽거리시네요. 웽웽, 웽웽! 도대체 지치지도 않으세요?

(숨을 크게 내쉬며 창밖을 본다) 아아... 난 정말 지루해 죽겠어.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쏘냐:

(도도한 옐레나를 빤히 쳐다보며, 단호하고 빠릿빠릿한 어조로 쏘아붙인다)

"할 일이 왜 없어요? 마음만 먹으면 천지인데! 영지 살림(하자이스뜨밤)을 돌보든가, 농부들 아이들을 가르치든가(우치), 환자들을 치료해 주든가(례치)! 왜 일이 없어?

엄마하고 아버지가 여기 영지에 안 내려왔을 때만 해도, 나랑 바냐 삼촌은 직접 마차 끌고 장에 나가서 밀가루를 팔았어!"


​옐레나: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난 할 줄도 몰라. 그리고 솔직히 관심도 없어.

농부들(무쥐끼) 챙기고 가르치는 건 무슨 훌륭한 이념 소설에서나 나오는 얘기지. 안 그래요? 내가 뜬금없이 어느 날 갑자기 들판에 나가서 그 사람들 치료를 하고 글을 가르치겠어?"


​쏘냐: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가슴을 치다가,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쉰다)

"하아... 난 도리어 어떻게 농부들을 찾아가지 않고 안 가르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네.

(억지 미소를 지으며 옐레나에게 다가가 가볍게 안는다) 기다려 봐요, 곧 익숙해질 테니까.

너무 지루해하지 마, 엄마(라드나야).

(허탈하게 웃으며) 엄마가 지루해서 안절부절못하니까, 그 지루함 하고 나태함이 우리한테까지 전염되잖아요. 봐요.

바냐 삼촌도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림자처럼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고, 나도 내 일 내팽개치고 엄마랑 수다나 떨려고 달려왔잖아.

나까지 게을러졌어, 미치겠네 정말!

예전엔 한 달에 한 번 영지에 와달라고 사정사정해도 안 오던 아스뜨로프 선생님마저도...

(창밖을 보며, 체념한 듯 중얼거린다)... 그분을 이 영지로 모셔오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매일 여길 오시잖아. 자기 숲도, 의술도 다 내팽개치고. 엄마는, 아무래도 마녀가 틀림없어."


​번역 노트: 구슬을 보배로 꿰는 시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번역을 도와준다 해도, 결국 그 문장의 결을 다듬고 인물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실로 꿰어내는 것은 나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나의 번역 속도는 더디고 고되다.


​하지만 그 더딘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겨진 구조의 비밀을 하나씩 발견한다. 완성된 낭독극을 꿈꾸며 한 땀 한 땀 꿰고 있다. 다양한 버전의 《바냐 아저씨》 낭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러시아 원문 전체를 번역하는 작업을 6개월 내로 완료할 것이다.


희곡 낭독은 내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하나는 상처 입은 나를 객관화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밤 9시 나만의 무대에서 누리는 우아한 휴식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목소리로 한 땀 한 땀 꿰어 읊는 행위가 나의 상처를 정화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구조관계론 #직장인 #인간관계 #에세이 #안톤체호프 #희곡낭독 #놀이

매거진의 이전글《바냐 아저씨》 명대사 러시아어 필사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