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 만만치 않은 도전
2019년을 마무리하기 전,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프랑스어 기초 공부하기. 내년 2월 프랑스 영화 <#아이엠히어>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출연한 외국 영화를 원어 그대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예전부터 언어 공부를 많이 해서 영화를 볼 때 자막이 아닌 원어에 담긴 뜻과 감정, 조금 더 공부를 해서 그 나라의 문화도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감성인 일본 영화, 대만 영화뿐만 아니라 학교 다닐 때 노래로 딕션을 조금이나마 공부했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영어까지... 언어를 공부해서 영화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혹시나 그 나라의 감독님들에게 캐스팅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까지 온다면 그 무엇보다 가장 특별한 순간이겠지. 30대 중반에 진입하기 전, 배우로 살아가게 된 출발점을 떠올려 본다.
1. 배우의 출발점
10대에는 컴퓨터만 붙들고 살아서 웹디자이너와 컴퓨터 교사를 꿈꾸고 살았고, 20대에는 음악에 빠져 살아서 음악 교사, 합창단원, 음악 간사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30대에는 내 삶에서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연기의 길을 걷게 되면서 배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순간순간이 아직도 놀랍기만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사실 20대를 돌아보면 내가 하고 싶은 전공, 하고 싶은 삶을 충분히 누리면서 살았지만, 29살을 얼마 남기지 않고 30대를 앞두면서 뭔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맞는지, 평생 즐겁게 살 수 있는 삶인지... 당시에는 호원대학교에서 연기, 뮤지컬, 실용음악, 기획 연출, 패션디자인 전공 대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강의나 설교도 하기도 했고, 선후배 간사님들과의 사이도 좋았다. 외부 집회가 있으면 가끔 보컬로도 함께 섬기는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비전에 대해서 고민이 찾아오는 시간이 왔고, 밤새 뜬눈으로 생각하거나 기도를 하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바로 영화. 이전에도 꿈 이야기를 할 때 글에 적었지만, 나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영화를 통해 얻은 것들이 참 많았다. 영화관에만 가면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 기쁨과 슬픔, 감동과 분노 등 모든 감정을 다 쏟아낼 수 있었던 공간. 나 역시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의 아픈 마음을 토닥여주고 싶고, 지친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고, 눈물이 필요한 이들에게 울어도 괜찮다며 펑펑 눈물을 쏟을 수 있도록 위로의 손길로 다가가고 싶었다. 웃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즐거움을 되찾아주고 싶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에서 아주 작게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영화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엄청 행복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된다니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일인가! 그때부터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면 촬영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작가나 감독이 되어야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너무 눈앞이 캄캄하고... 아니면 스탭? 엄청 많은 스탭이 있는데 어떤 일을 배우고 찾아야 하는 거지? 이런저런 직업을 검색해보고 고민하다가 연기도 검색해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이순재 선생님의 연기학원에서 일주일 스파르타 클래스 이벤트가 열려 있었다. 연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 일단 부담 없이 들어보자 해서 신청을 하게 되었고, 6000명 정도 조회한 글에 10명 안에 당첨되어서 클래스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연기생활의 첫 시작이었다.
2. 감정을 표현하며 나를 알아가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여리지만 겉으로 잘 드러내지 못했다. 첫째라서 늘 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생들 앞에서, 심지어 친구들 앞에서도 울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맞을 때도 눈물을 꾹 참으면서 오기로 더 맞기도 했다. 하지만 눈물 연기 시합에서는 늘 1등을 차지했다. 친구들과 함께 눈물을 먼저 흘리는 시합을 하면 순식간에 눈물이 뚝 떨어지는 한 소녀, 그게 바로 나였다.
스파르타 클래스 이벤트로 연기 수업을 들었을 때, 나조차도 소름 끼쳤던 경험이 있었다. 그 날은 ‘상상력 훈련’ 프로그램이었는데, 내 발이 나무토막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즉흥극으로 연기를 펼치는 시간이었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 가운데 서서 내 발을 쳐다보는데 정말 놀랍게도 내 발이 나무토막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발이 딱딱하게 변했고 너무 무거워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갑자기 무서웠다. 이 모습을 보게 될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두려웠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어야만 하는 내 모습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서럽게 펑펑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갑자기 선생님의 괜찮냐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발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잠시 정적이었다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상황에 몰입하여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이런 게 연기라면 계속 공부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서 그날 바로 내가 원하는 커리큘럼이 있는 학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후 정식으로 등록한 연기 수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화술이나 감정이 잘 전달되어야 하는 수업에서 항상 발연기처럼 보여줬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발음, 연기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어색했다. 하지만 눈물이 필요한 연기에서는 순식간에 몰입해서 펑펑 쏟아내는 게 쉬웠다. 특히 가족이 연관되어 있는 장면에서는 서럽고 슬픈 감정이 순식간에 올라와서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연기뿐만 아니라 화술 수업에서도 어떤 장면을 던져줬을 때, 그 상황에 깊이 몰입하면 분노가 터져서 목소리도 엄청 높아지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해야 할 말은 꼭꼭 씹으면서 말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볼 때 감정이입이 금방 되어서 눈물이 꽤 많았던 나였다. 그저 감수성이 풍부하다고만 생각했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잘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내 감정 또한 이렇게 표현하다 보니 연기를 배우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것 같았다. 많은 부분을 고치고 싶고 성장하고 싶었다. 배우로서의 길은 멀고 멀지만 내가 변화되어 가는 그 시간들이 참 행복했다.
3. 데뷔를 꿈꾸기까지
서른 살,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엄마에게 늘 습관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딱 3년만 기다려달라는 말. 하지만 다른 배우분들은 데뷔하기까지 3년, 5년, 10년 이상이 걸리기도 하니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자고 했던 말.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연극영화과나 방송연예과 전공도 아니고, 내 주변에는 영화, 방송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이 전혀 없었다.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라 연기 학원과 연기 스터디를 하기 위해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수입이 많이 부족하기에 레스토랑에서 정직원으로 9시간 이상 일하면서 병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지쳐서 쓰러지기도 하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처음으로 공황장애라는 증상도 얻게 되었다. 귓가에 삐 하는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렸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숨고 싶었다.
연기를 계속 배우고 있어도 현장으로 진출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었다. 촬영 경력이 전혀 없는 나이기에 오디션에 지원할 프로필에 경력으로 쓸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 광고 에이전시에 영상 프로필도 찍어보고, 프로필 사진을 새로 찍어서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배우 모집 글들 중 저렴한 출연료의 작품에 지원을 하면 혹시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지원했지만, 수십 통을 돌려도 연락은 오질 않았다. 당연히 경력이 없는 배우, 아니 배우 지망생인데 쓰려고 하지 않겠지. 연기 경력은 없고, 성악 연주회나 창작 뮤지컬 경력만 담겨있는 말도 안 되는 배우 프로필을 돌리다가 결국은 제풀에 쓰러져서 지쳤다. 아르바이트로 돈만 벌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대학교 4학년 때 1년 동안 선교 활동으로 다녀오려고 휴학해서 준비했다가 동아리 회장이 되어 가지 못했던 뉴욕이 갑자기 생각났다. 뉴욕 여행을 다시 결심했다. 뉴욕에서의 3개월 자유여행을 위해 떠나기 일주일 전 티켓팅을 마치고, 배우의 삶도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떠난 뉴욕 여행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큰 도전을 받고 돌아왔다. 허리디스크 초기 증상이 다시 재발되어 25일은 숙소에 누워있었고, 25일은 뉴욕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돌아왔다. 원래 예정이었던 3개월이 아닌 50일로 여행 기간은 줄었지만, 그 시간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결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리운 뉴욕,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면 뉴욕행 비행기 일정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뉴욕 여행 이후 나는 단단해진 마음으로 주어진 무슨 일이든, 무슨 배역이든, 어디에서든 열정을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작품과 해낼 수 없을 것 같던 배역이 하나씩 찾아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내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게 주어진 하나하나가 소중한 선물이었고 특별한 기회였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선 안된다. 더 많은 열심과 노력,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잘 해내야 한다.
새롭게 주어질 작품과 배역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배우 장세아, 기대해보자.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