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익숙해져야 하는 것

낯선 내 모습, 내 것이 아닌 것들

by 장세아

곁에 있던 많은 사람이 떠났고, 여전히 함께 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온 사람들도 있다. 내가 원한다고 전부 붙잡을 수 없고, 극단적이고 호불호가 강한 나를 누군가 붙잡을 수도 없다. 쉽게 생각하면 되는데 문제를 어렵게 끙끙 해결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단순해지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도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집중하고 싶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게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아직도 어렵고 무겁다.








1. 내 사람이 뭔데

내 사람들이라고 생각되면 모든 것을 다 퍼주고 싶었다. 나를 편하게 대해주고,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나와 생각하는 게 비슷한 사람들. 그런 이들을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내 모습을 솔직하게 다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내가 정해놓은 기준이었음을 몰랐다. 내 마음이나 상대방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중요했던 것. 내 사람이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아껴주고 챙기려고 한 걸까, 왜 그런 걸 정해두고 있었던 걸까, 그 누구도 내 소유가 아닌데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내가 다가가는 것도 시간이 걸리지만 상대가 마음을 여는 것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친밀감을 느끼는 정도도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나와 충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타인의 반응들이나 가까워지지 않는 시간만 바라보면서 조급해하거나 힘들어 지치지 말자. 이제는 좀 내려놓자. 내 사람이라는 틀 안에서 스스로를 가둬놓지 말자.



2. 자책은 이제 그만

스스로 목표를 정해두고 살아가는 편이다. 올해의 목표, 이달의 목표, 이주의 목표, 하루의 목표. 하지만 그 목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한 번에 다 놓아버리면서 무기력한 삶을 살기도 한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느샌가 포기하고 싶어 지는 마음. 목표가 너무 높은 걸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할 기준을 세우기에 한계를 금방 느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올해의 목표는 기타를 꾸준히 배워서 악보를 보고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연습하기. 음악영화를 언젠가는 꼭 찍고 싶은 마음에 1월부터 12월까지 딱 한 달을 빼고는 열심히 배우고 노력했다. 그러다 이상하게 일이 꼬이게 되면서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많으면 하루에 3~4시간까지도 연습했던 기타였는데 틀어진 관계와 여러 상황으로 인해 흥미를 잃어버렸다. 누구를 위한 목표였는가? 내 실수로 인해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커져버린 실망으로 지금까지 쌓아둔 것들을 다 놓는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 아닌가.


작년 12월부터 알아보면서 굳게 마음먹고 시작한 기타, 1년이 지난 지금 20곡이 넘게 연주하는 법을 배우면서 노력했던 시간들을 잊지 말자. '아이유-너의 의미', '아이유-밤편지', '나르샤-I'm in love'를 연습하면서 간절히 원했던 연주 발표회를 두 번이나 못 하게 되었고 홍대에서의 공연 역시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가 보자. 음악 전공하면서 각종 연주회, 음악 간사를 하면서 수많은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더 성장하는 내가 되기 위해 포기만큼은 절대 허락하지 말자.


그리고 또 다른 목표 중 하나는 작품 5편 이상 촬영하기가 목표였다. 내가 원한다고 전부 다 이룰 수는 없는 목표였지만 영화는 <1919 유관순>, <기방도령>, <출장수사>, <미션 파서블> 이렇게 4편을 찍게 되었고, 광고 1편, JTBC 웹 예능 1편까지 찍게 되었다. 그래도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마음. 중간중간 촬영을 쉬었던 시간들도 많았고 올해 유난히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사실 작품 수보다도 중요한 것은 올해는 주연에 이름이 있는 배역도 두 편이나 촬영하게 되었고, 각종 포털사이트에 등록이 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사이트에도 프로필이 생긴 것이다. 연기 시작한지 3년 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지만 여전히 만족하고 있지 않은 내 모습. 자꾸만 내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책하는 모습. 이제는 좀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이라도 건네주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영화 <1919 유관순>, 2019






이 글을 쓰기까지 6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상하게 글을 쓰다 말다 반복하면서 유난히 글이 안 써지던 한 주. 그동안 뭔가 길게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그 압박감도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짧게 쓴다고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던 것. 그리고 엄청 피곤했다. 먹기만 해도 졸리고 약속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때도 하품이 계속 나오고, 개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이상하게 눈이 무거웠다.


사람이기에 컨디션이 항상 좋을 수도 없고 감정 역시 메마를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인정하자. 어제 후회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면 오늘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살피고 사랑해주자. 놓아줄 것은 놓아주고 내려놓아야 할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자. 어렵지만 조금씩 반복해서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익숙함 조차 없는 낯선 스스로에게 익숙해져야 할 때, 그리고 조금씩 소중하다고 여겨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