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처럼 찾아오는 마음의 병
예전에는 자주 즐기던 여유로운 시간, 카페에서의 책 읽는 시간. 요즘은 뭐가 그리 바빴는지 카페를 찾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 집에서는 책을 종종 읽는데 카페에서 시간을 많이 내면서 책을 읽은 시간이 최근에는 별로 없었구나. 그래서 북클럽 이후에 카페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11월에 참석했던 북클럽의 책인 [가만히 위로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읽다가 한 구절이 콕콕 쑤셔 왔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나만 없어지면 돼!'라는 생각이 너무나도 강하게 든다는 글. 지난 10월, 11월에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었다. 나만 이 곳에서 없어지면 되겠지, 나만 조용히 사라지면 되겠지. 그 글을 보고 깨달았다. 많이 우울했구나, 내 마음이 많이 아팠구나.
그리고 방송에서도 한 청취자분이 말씀해주셨다. 우울증 뿐만 아니라 공황장애의 증상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내가 2016년에 겪었던 공황장애는 숨이 갑자기 안 쉬어져서 비닐팩으로 입과 코를 막아야만 겨우 호흡이 가능했고, 사람 많은 곳이 부담스러워서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답답한 마음이 가득하고, 이유 없이 계속 눈물만 났던 그런 모습이 공황장애였는데... 내가 우울증, 공황장애를 다시 겪고 있는 중이라고? 세상에 이런 일이.
1. 우울증, 감기처럼 찾아오는 증상
동생과 파스타를 먹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지난 10월에 우리 가정에 갑작스레 찾아온 혼란스러운 상황들, 앞으로도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여러 과정들.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이 참 많았지만, 가정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크나큰 어려움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속으로 곪아 있었고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집순이인 나인데도 불구하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자꾸 밖으로 나돌려고 하고, 가족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위로를 받고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모습,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걸 보지 못 하는 나인데도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았고, 내 책상 위에 물건들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는데도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선 잠만 자고 기타 치느라 바빴다. 세 살인 조카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도 거실에서 만화만 틀어주고 나는 방에 틀어박혀 조카가 부르지 않는 이상 잘 나가지도 않고... 집이 편하게 쉬는 공간이 아닌, 답답한 곳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집뿐만 아니라 필라테스 센터에서도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중간에 5시간은 휴식)하는 상황들이 3주간 연속으로 일어났고, 업무는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답답함은 계속되었다.
동생은 10월에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해보니 본인이 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면서 솔직하게 얘기해주었다. 예전에도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었으나, 이번 10월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면서 너무 괴로웠다고... 하지만 우울증은 감기처럼 찾아오는 증상이라고 얘기하면서 잘 극복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썼다고 달래주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11월에 동생에게 큰소리로 뭐라고 했던 적이 떠올랐다. 너만 힘드냐고, 우리 가족 모두 힘들다고, 너는 왜 너만 힘들다고 생각하냐고.
그랬다. 동생만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함께 겪으면서 다들 우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당시엔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아마 너무 힘들었기에 나 자신을 전혀 바라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문제들만 곱씹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서워하고, 실제적인 공간을 벗어나 가상공간에서도 답답함을 느껴 그 공간에서 내가 사라져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악몽을 꾸고, 수면장애와 소화장애가 생겼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느낌. 이게 바로 책에서 말하던 우울증이 깊어지면 나타나는 증상이라는데 감기처럼 다가온 그 우울증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공황장애 증상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 어지럽고 휘청휘청하거나 졸도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O)
• 맥박이 빨라지거나 심장이 마구 뜁니다.
• 손발이나 몸이 떨립니다.
• 땀이 납니다. (O)
• 누가 목을 조르는 듯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메슥거리거나 토할 것 같습니다. (O)
•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들거나 자신이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듭니다. (O)
• 손발이 저릿저릿하거나 마비되는 느낌이 듭니다.
• 화끈 거리는 느낌이나 오한이 듭니다. (O)
• 가슴 부위에 통증이나 불편감을 느낍니다.
•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낍니다.
• 미쳐버리거나 스스로 통제를 할 수 없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O)
[네이버 지식백과] 공황장애 [panic disorder] (국가 건강정보 포털 의학정보, 국가 건강정보 포털)
위와 같은 증상 중 4가지 이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공황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3년 전처럼 공황발작 증상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6개 정도의 증상이 자주 있었다. 물론 병원에서 나온 진단이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으나 너무 놀랐다. 자주 어지러운 건 빈혈이 심해서인 줄 알았고, 땀이 나는 것은 갑자기 체온이 올라가서인 줄 알았고, 메슥거리거나 토할 것 같은 느낌은 소화 장애인 줄 알았고, 화끈거리거나 오한도 자주 왔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나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순간순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나를 잘 몰랐다니... 공황장애가 연예인들도 그렇고 일반인들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긴 하나, 내게 다시 한번 찾아올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감기처럼 찾아온 듯한 느낌이다.
2. 불안해도 괜찮아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늘 차분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나인데 감정이 계속 요동치고 하루하루 울렁이면서 부정적으로 지배하는 듯한 내 생각이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은 나중에 나를 멀리서 바라볼 때였다. 힘들었던 당시에는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자꾸 밀어내고 따가운 가시를 돋아내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웃으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속으로는 조금이라도 상처 주는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공격하고 비난하다가도 또 후회하고. 나 자신도 자꾸 바뀌는 알 수 없는 마음이 전혀 이해되질 않았다. 매일 불안함 속에 살고 있었고, 그 두려움이 나를 몇 주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해주려는 몇몇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지만, 결국은 내 감정만 구구절절 쏟아내어 다른 이들을 피곤하게 하고, 내 아픈 마음까지 그들에게 훨씬 더 많이 얹어 주면서 공동체에 더 큰 피해를 낳게 되었다. 뒤에서 누군가를 험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나 역시 그런 상황들을 너무나 많이 겪었기에 침묵을 선택하거나 그런 자리를 피했던 나인데 정말 내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너무 속상하고 아프고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내 모든 인간관계가 이대로 끝나는 것 같은 느낌에 이 세상에서 존재감마저 사라진듯한 느낌이었다.
심각한 내 상태를 깨달은 후 브런치에 글을 남겨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사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혹은 몰랐던 내 모습을 알아가는 것 같아서 처음엔 들뜨기도 했고 그저 신기했다. 그러나 내 어두웠던 모습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하지만 않았다. 이전보다는 한결 편해졌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도 있었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 한 어릴 적 트라우마가 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에밀리아 클라크(케이트 역)의 행동과 헨리 골딩(톰 역)의 대사를 보면서 공감과 동시에 위로의 마음을 받게 되었다. 뭘 해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이고, 사랑받지 못하고, 어딜 가도 좋지 않은 얘기만 듣는다고 생각하는 케이트. 나도 항상 그런 마음이었고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톰이 끊임없이 외치는 "위를 봐요",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케이트에게 그런 모습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톰. 나 자신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혼란스럽고 자신을 모를 수도 있지만 괜찮다는 위로의 한 마디에 눈물이 주르륵 어찌나 많이 흘렀는지 모른다.
아, 불안해도 괜찮구나. 세아야, 지금은 너를 잘 몰라도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으니 괜찮아.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지난 글을 쓴 지 벌써 5일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또 일어났고, 힘들었던 순간 속에서 여전히 마음이 답답하기도 했으며,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삶이 재미없다는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와중에 내가 그동안 남긴 글을 보면서,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힘이 되고 위로를 얻었다는 긴 장문의 메일 한 통을 받으면서 머리가 하얘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배우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선배이자 같은 영화와 드라마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언니. 너무 감사한 마음과 감격에 벅차서 바로 답장 버튼을 누르지도 못 했다. 몇 번이나 그 글을 읽고 어지러웠던 내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언젠가는 꼭 될 사람이기 때문에 늘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그 용기를 주시는 말씀, 순수하고 밝은 모습 잃지 말라고 하셨던 그 말씀. 마음속에 늘 간직하면서 씩씩하게 지내는 배우로 살겠습니다. 힘들어도 지쳐도, 그리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다시 찾아올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배우로 살겠습니다. 늘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응원하는 장세아로 살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