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
그로부터 다섯 번째 여름이다. 당신과 보내는 긴밀했고 짧았던 여름이 오래 기억될 것 같으니 나는 당신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공백을 딛고 일어선 나와 당신의 사이에서 오고 갔던 것은 수명이 짧은 풀벌레와 닮아있다. 매년 탄생의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오지만 길어도 넉 달이 지나지 못하는 짧은 생의 풀벌레. 나는 여름이 되면 환상을 꿈꾸지만 당신은 사계절 동안 환상을 꿈꾸는 것 같았고 그럼에도 복잡하고 좁았던 당신의 환상에 내 그리움이 속할 자리는 없었다. 당신이 걸었던 수많은 갈레에서 갈라지고 다시 만나며 나는 오랜 시간 당신의 길에서 서성거렸다. 당신의 환상을 읽고 두려웠던 내가, 당신의 절벽을 목격했던 내가 당신의 벽 너머의 공간이라면 어땠을까. 당신의 오래됨이라면 어땠을까.
당신은 마침내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꿈꾸는 당신. 동경하는 당신. 사랑하는 당신. 함께 보던 나뭇잎의 부드러운 몸짓처럼 때론 멋들어지게 활강하는 새들의 날갯짓처럼 당신의 손끝으로부터 너울거릴 세계가 시작됐다. 아득했을 세계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잉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풍경으로부터 조용하고 내밀하게 당신을 비유했을 것이며 한줄기의 환상처럼 수많은 계절이 내렸을 것이다. 이는 당신이 머물렀다 막 떠난 자리가 4월의 하얀 설렘처럼 따뜻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