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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14. 2022

수입산 보험의 부작용

근대화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보험산업이 남겨 놓은 과제들

  한국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근대화의 과정을 겪었다. 우리가 그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며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은 자의였다기보다는 타의에 가까웠다. 먼저 근대화를 이룬 나라가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이 침략이 되고 그들의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근대화를 접했다. 그리고 독립한 이후 6.25 전쟁으로 부서지고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근대화를 이뤄냈다. 우리가 근대화를 이뤄낸 속도는 어느 나라에게도 뒤지지 않고, 그 수준도 상당히 높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근대화를 우리 스스로, 자연스럽게 이뤄낸 것이 아니라 근대화된 것을 수입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부터 시작해서, 경제, 철학, 교육 등 영역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근대화를 이룬 나라의 체제를 수입하고 빠르게 적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에는 신경 쓰지 못한 몇 가지 문제가 있었고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커 버린 우리 근대화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


  보험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금융이라는 산업 자체가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만큼 보험도 산업화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전쟁 이후 빠르게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들의 금융 시스템, 그리고 보험산업도 수입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보험이라는 산업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산업이 아니라 외부에서 수입해 온 산업이었다. 산업화된 국가와 같은 형태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국가 주도로 만들어내고 성장시킨 것이 보험이었고, 거기에는 분명히 한 번쯤은 앓고 넘어가야 하는 성장통이 잠들어있었다.


  보험 산업을 수입하면서 첫 번째로 우리가 얻은 부작용은 보험 산업의 구조적인 결함이다. 보험은 무엇인가 잃을 것이 있는 사람들이 그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처음 근대화된 보험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바다를 떠난 배가 금이나 향신료를 잔뜩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배가 돌아오기만 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반대로 배가 돌아오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보험 산업을 수입하던 시기의 한국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잃을 것이 없는 나라였다. 멋들어지고 비싸게 지은 건물도, 지켜내야 할 만한 좋은 배도 없었다. 그러니 화재보험이나 해상보험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가 성장할 수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잃을 집도, 잃을 배도 없는 나라에는 화재보험이나 해상보험을 판다고 해도 돈을 벌 수가 없다. 보험에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건물이나 배 자체의 가격이 선진국처럼 비싸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보험료를 받아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보험 산업을 성장시켜야 했던 한국은 한 가지 변화를 준다. 바로 손해보험사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을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상품이 '실손의료보험'이었다. 실손의료보험은 비싼 집이나 배가 없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만한 상품이다. 그리고 '실손'이라는 성질은 손해보험의 성격에 부합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손해보험사의 성장을 위한 선물로 적합해 보였을 것이다. 실손의료보험을 정부 주도 하에 손해보험사가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손해보험사의 매출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성장 동력을 찾게 된 것이다. 실손의료보험이 마치 손해보험사에게 영양 주사를 한 대 놓은 듯한 역할을 했는데, 문제는 정부 주도 하에 판매한 상품이라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보험사가 적절한 보험료를 산출하고, 남용하는 사람들을 제지할 수 있는 장치를 보완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천천히 만들고 판매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가입한 오늘날, 실손의료보험은 손해보험사에게 가장 큰 손실을 안겨주고 있는 상품 중 하나가 되었으며 큰 손실을 보면서도 보험사가 쉽게 손대지 못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손해보험의 성장을 위한 노력은 실손의료보험을 팔 수 있도록 한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실손의료보험은 사실 보험료가 크지 않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가입하더라도 생명보험사만큼의 매출을 올리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한국은 하나의 약을 더 처방했다. 흔히 보험사에서 건강보험이나 상해보험이라고 해서 판매하는 상품인데, 사망을 담보하는 상품이 아니라면 질병이나 상해에 관한 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손해보험사에서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3보험이라고 부르는 이 영역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 보험산업의 가장 이질적이고 독특한 점이 되었다. 손해보험사가 암보험도 팔고, 각종 질병을 보장하는 보험을 모두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는 생명보험사만 팔 수 있는 상품이 사망을 담보로 하는 종신보험과 같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주사는 손해보험사에 엄청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생명보험은 점점 매력을 잃어가는 반면 건강보험은 워낙 다양한 질병이 있기 때문에 개발 영역이 훨씬 넓었다.


  이제는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생명보험사보다 손해보험사를 찾기 시작하면서 손해보험사는 점점 생명보험사를 따라잡기 시작했고, 종신보험의 수익성마저 악화되면서 손해보험사가 수익성에서 생명보험사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비슷하게 성장시키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질적인 산업 구조, 손해보험사가 인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 형태는 저성장 시대가 찾아오면서 심한 출혈경쟁 등의 부작용을 여전히 낳고 있다.


  생명보험사 입장에서는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다. 생명보험사는 보험료 규모도 크고 한 번 가입하고 나면 꽤 오랜 기간 보험료를 거수할 수 있는 종신보험을 판매하면서 성장에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문제는 일단 종신보험을 팔고 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시점은 한참 뒤라 수익을 바로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수익이 바로 났기 때문에 생명보험사 입장에서는 일단 많이 팔면 팔수록 오늘의 삶이 행복했다. 그러니 종신보험의 긴 보장기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는 방법만 고민했다.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만기 환급금이나 보험금에 높은 이자를 쳐서 주는 것이다. 당시에는 산업화가 이뤄지고 국가 전체적으로 충분히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높은 금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생명보험사는 앞다퉈 거의 두 자리대의 높은 금리를 만기까지 확정적으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며 상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종신보험의 만기는 너무나도 길었고, 약속한 금리를 확정적으로 지급하겠다는 말은 오늘날 생명보험사에게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생명보험사들은 여전히 막대한 규모의 확정 고금리 종신보험 계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그때 약속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저성장이 기본이 된 요즘은 두 자릿수는커녕 3%대 투자 수익률을 거두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줘야 할 이자는 10%가 넘는데,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수익률은 3%라고 하면 간단히 말해 매년 지금까지 받은 보험료 부채의 7%씩 손실이 나는 것이다. 종신보험의 보험료가 크고 오랫동안 납입하는 만큼 생명보험사의 보험료 부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자 손실 또한 매년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을 상회하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 근대화된 금융 시스템, 보험 산업을 수입하고 성장시킨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성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보험은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않았고, 잃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보험 산업을 억지로 키워 냈다. 그만큼 그 과정에서 눈 감았던 부작용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보험산업을 단순히 수입한 것이 아니라 수입해서 우리 것으로 온전히 만들어 낸 산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서 이 부작용을 직시하고, 개선해나갈 필요는 분명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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