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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y 15. 2022

일반손해보험의 고민

보험으로서, 그리고 투자로서

보험이 고민하는 거의 모든 문제는 결국 수지상등의 문제, 나갈 돈과 들어올 돈을 같게 만드는 것과 이어져 있다. 상품을 개발할 때 수지상등을 맞출 수 있는 보험료를 산출하고, 영업과 심사는 수지상등을 맞출 수 있는 리스크만을 모아 계약 집단을 형성한다. 판매된 상품의 수지상등이 행여나 틀어질까 봐 준비금을 수시로 검증한다. 관점이 다르고, 방법이 다를지언정 수지상등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회사도 기업인데 나갈 돈과 들어올 돈을 똑같이 맞추는 게 목적일 수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목적일 수가 있다'가 아니라'목적이 되어야만 한다'이다. 그게 보험을 보험으로 만들어주는 본질적인 차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험을 하는 것이지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운에 걸어 놓고 사고가 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일은 도박일 뿐이다. 보험은 도박이 아니기에 얼마나 지출될지 미리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보험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인해서 계약자에게 주는 효익을 고려해서 마진을 붙이는 것이다. 책상, TV, 컴퓨터 같은 상품의 가격이 원가와 여기에 더해지는 마진을 고려해서 결정되듯 보험도 도박이 되지 않으려면 원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반손해보험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된다. '과연 우리는 하나하나의 물건이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는 일반보험에서 수지상등의 법칙을 만족시키는 원가를 산출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도 저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있는 만큼 나이, 성별에 따라 구분된 각각의 집단으로 따져봐도 충분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의 사람이 갖는 공통점은 서로 다른 건물이나 배가 갖는 공통점보다 훨씬 크다. 건물은 나이가 같아도 건축된 방법에 따라 달라지고, 높이, 면적에 따라 달라지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조금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건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지출될 보험금을 잘 예상해서 보험료를 산출할 수 있을까? 게다가 사람이 상해, 사망, 암보험과 같이 여러 종류의 보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일반보험의 물건들도 보험증권이 모두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담보하는 위험에 따라 어떤 증권은 모든 사고를 보상하기도 하고 어떤 증권은 화재, 어떤 것은 침수, 태풍, 지진 등 셀 수 없이 많은 담보 위험이 존재한다. 바다 위에 있는 배는 해상 고유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다. 물건도 상이하고, 담보해야 하는 위험도 이토록 다양하기 때문에 각 위험집단, 담보 위험에 따라 통계적인 요율을 산출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동질적인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각 물건이나 증권 하나하나에 맞춰서 보험료를 산출하기가 어렵다면 더 큰 단위로 구분해서 데이터의 개수를 늘려볼 수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지출이 예상했던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선 이러한 고민은 뒤로 하고 예상되는 지출을 잘 계산해서 보험료를 산출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암보험에 가입했는데 보험료가 연령과 상관없이 책정되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20세인 사람도, 80세인 사람도 같은 보험료를 낸다면 결과는 뻔하다. 자신이 가진 위험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책정받았다고 생각하는 20대는 이탈할 것이고, 자신이 가진 위험보다 적은 보험료가 책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80대는 더 많이 가입하게 될 것이다. 우량한 가입자는 줄어들고 불량한 가입자는 늘어난다. 우리는 이것을 역선택이라고 부르는데, 위험 집단을 너무 크게 잡게 되면 역선택이 발생해서 예상했던 지출보다 더 큰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


동질적인 위험만을 고려해서 보험료를 산출하자니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수지상등을 맞추기 어렵고, 수지상등을 맞추기 위해 동질적인 위험의 단위를 더 넓게 생각하자니 역선택이 발생해서 수지상등이 틀어질 수 있다. 애초에 동질적인 위험의 물건이 충분하지 않은 일반보험에서는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가 하는 일이 도박이 아니라 보험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수지상등을 맞춰야 하는데 일반보험이라는 영역이 가진 본질적 특성 때문에 그게 쉽지 않다. 우리는 일반보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보험이라고만 하기에는 원가 산출도 어렵다. 그렇다고 도박이라고 하기엔 우리는 운만 믿고 돈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물건을 평가하고, 계약의 특성을 평가해서 계약을 체결한다. 도박이라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보험은 보험이지만 보험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보험의 고민인 수지상등으로만 일반보험을 바라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 일반보험이 하는 일 자체는 인보험에서 하는 일과 비슷하다. 위험집단을 나누고, 데이터를 확보해서 통계량을 산출한다. 기댓값도 확인하고, 표준편차도 확인하고, 리스크량도 확인한다. 그러나 그 결과를 이해하는 방법은 같지 않다. 인보험에서는 산출된 기댓값이 '추정'의 의미를 갖는다. 보험금의 기댓값은 이름 그대로 '기대할 수 있는' 값, 즉 추정치가 된다. 예상한 것과 결과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추정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보험에서 산출된 기댓값은 '기대할 수 있는 값'이 아니다. 손해율이 99%의 확률로 0% 일 수도 있고, 1%의 확률로 10,000% 일 수도 있는데 그 기댓값이 100%라고 해서 우리는 100%라는 결과를 '기대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값을 '예상'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라는 기댓값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여할 수 있는 의미가 달라질 뿐이다. 일반보험에서 이 100%라는 기댓값은 '추정'이 아니라 '평가'의 의미를 갖는다.


복권을 하나 사놓고 당첨금의 기댓값이 1,000원이라고 해서 1,000원을 기대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복권을 1,000원에 샀다는 것 자체를 '적정했다'라고 평가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보험에서 우리가 데이터를 모으고 통계량을 산출하는 이유는 예상하고 추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반보험의 반쪽이 보험이라면, 나머지 반쪽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복권을 1,000원에 산 것이 적정한 거래였는지 평가하는 일, 이것은 '투자'와 맞닿아 있다. 투자를 할 때 우리는 우선 투자안의 좋고 나쁨을 알려줄 수 있는 여러 지표를 산출한다. ROE는 어떻고, 부채비율은 어떻고, 영업이익률은 어떻고, EBITDA는 얼마인지, PER은 또 얼마인지를 먼저 알아본다. 그리고 이 값을 통해 결과를 바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그저 투자안을 평가할 뿐이다. PER이 10 이어도 투자할 수 있고 PER이 30 이어도 투자할 수 있다. 투자안에 대한 결정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평가한 뒤에 내리는 판단이다. 일반보험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급될 보험금에 대한 지표를 산출하지만 그 끝에는 결국 평가의 문제가 남아 있다.


여기 일반보험 계약이 2개 있다. 각 계약에 해당하는 데이터도 열심히 모았고, 그 데이터를 가지고 지출될 보험금의 통계량도 잘 산출했다고 해보자. 하나는 지출될 보험금의 기댓값이 100만 원이고 5% 확률로 1억이 지출될 수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지출될 보험금의 기댓값은 80만 원이지만 5%의 확률로 5억이 지출될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떤 계약을 더 선호하는가? 둘 중 하나만을 체결할 수 있다면 어떤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일반보험의 나머지 반쪽인 투자성은 이 질문에 담겨 있다. 물론 인보험도 이러한 특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인보험이 가진 기댓값은 100만 원, 5% 확률로 105만 원이 지출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기댓값 95만 원, 5% 확률로 110%가 지출될 수 있다. 차이는 '정도'에 있다. 인보험은 통계적으로 갖는 특성상 기댓값을 '기대할 수 있는'영역이기 때문에 기대를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모든 보험은 보험으로서 수지상등의 고민과 함께 투자로서 리스크의 평가라는 고민을 동시에 갖지만 인보험은 전자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뿐이다. 반대로 일반보험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 없었던 물건에 대한 새로운 보험을 만들어야 한다고 치면 그건 보험의 고민보다는 투자의 고민이 크지 않을까? 누군가가 사이버보험을 만든다고 하면 그때는 수지상등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 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대비 리스크의 크기가 적절한지를 평가하는 것이 맞다.


간혹 일반보험의 문제를 보험의 문제로만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일반보험의 문제는 결코 보험의 고민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수지상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리스크의 평가라는 문제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가 인보험을 하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리스크의 평가라는 고민을 더 크고,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곳이 일반보험이다. 기댓값을 더 정확하게 추정하고 분산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만이 모든 일의 끝이 아니라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산출된 기댓값에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 계약의 표준편차가 저 계약보다 작다면 그 차이를 우리는 어느 정도의 기댓값과 교환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고민에 대한 답까지 끝마쳐야 일반보험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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