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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02. 2022

자기부담금과 책임한도액의 영향

Deductible / Limit

  손해보험 상품을 보다 보면 인보험 상품과는 다른 요소가 있다. 이런 요소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기부담금(Deductible)과 책임한도액(LImit)인데, 그래서 손해보험의 가격이나 준비금을 산출하는 과정을 공부하다 보면 모델링 단계에서 항상 자기부담금이나 책임한도액이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게 된다. 왜 이들 요소가 손해보험에서 특히 발달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가격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손해보험이 가지는 특성을 고민하다 보면 대부분 그 끝에는 '실손보상의 원칙'이 있기 마련이다. 인보험 상품은 대개 보험금의 지급사유가 정해지고, 그 지급사유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 지급되는 금액은 가입할 때 정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망했을 때 1억을 지급하는 종신보험은 사망이라는 지급사유가 발생하게 되면 고민할 것 없이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1억 원을 지급하면 된다. 그리고 이 금액이 가입할 때 정해진다고 해서 '가입금액'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손해보험은 그렇지 않다. 손해보험의 기본 규칙은 보험의 목적, 즉 가입된 물건에 발생한 '실제 손해액'을 보상해주는 것이다. 이를 '실손보상의 원칙'이라고 부르는데, 손해보험이 가지는 대부분의 특성, 그리고 가격을 산출하는 계리사 입장에서 고민하게 되는 모델링 상 수많은 문제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실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하는 일이라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액을 조사해서 보상해주면 되기 때문에 별로 복잡할 것이 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건물이나 선박과 같은 손해보험 계약의 물건은 그 물건의 가치 자체를 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동일한 물건을 다시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비용, '재조달가액'을 기준으로 하거나, 혹은 원가 기준으로 내용연수를 정해서 감가상각 한 금액을 기준으로 하기도 하지만 이는 물건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물건에 화재나 폭발이 일어나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언제나 물건이 전소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이 완전히 소실되는 것을 '전손' 일부 피해를 입는 것을 '분손'이라고 하는데 물건의 가치를 잘 산정했다고 하더라도 항상 전손이 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분손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가 물건의 가치를 얼마나 깎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손해보험에서는 손해액 산출이 어려운 문제가 되고,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손해사정사'가 필요하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손해액을 산정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다. 계리사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데, 계리사는 사고가 난 이후에도 파악하기 어려운 손해액을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추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적물의 가치는 계리사가 판단하는 영역은 아니기 때문에 보험가액은 제쳐둔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이슈, '항상 전손이 아니고 분손이 발생할 수 있다'가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된다. 이를 계리사의 용어로 표현하게 되면 손해액을 모델링할 때 인보험에서는 보험금의 지급사유가 발생할 확률, '빈도'만 고민하면 되지만 손해보험에서는 빈도와 함께 손해액의 크기인 '심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손해보험 모델링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항상 빈도와 심도 각각에 어울리는 모델링 방법과, 적합한 분포를 배우고 나서 최종적으로 빈도와 심도를 결합해서 '총 손해액'을 모델링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아무튼, 서두가 걸어졌지만 결국 손해보험의 특징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실손보상의 원칙'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목적물의 가치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손보상의 원칙의 결합은 보다 큰 '도덕적 해이' 위험을 만들어낸다. 보험에 가입할 때 내가 가진 공장의 가치가 100억이라서 100억을 가입금액으로 하는 화재보험에 가입했는데, 이후 경기가 나빠져서 내가 가진 공장의 가치가 50억이 된다면 도덕적 해이의 동인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서류 상 공장의 가치는 여전히 100억에 가깝고, 전손 기준으로 100억을 보상받을 수 있다면 사고가 발생하는 게 오히려 이익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손해보험에서는 기본적으로 높은 수준의 '자기부담금'이 발달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거대한 공장이나 건물 같이 보험사 입장에서도 전손이 발생하게 되면 보상을 충분히 하기 어려운 비싼 물건들이 늘어나게 되어 '보상한도액'도 같이 발달하게 된다. 실손보상이라고 해서 다 갚아준다고 말은 했는데, 거대한 반도체 공장 같은 물건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보상을 해 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여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물건의 위험액이 너무 커서 재무제표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리스크 관리 목적에서 노출되는 위험액(Exposure)의 크기를 제한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손해보험이 가지는 실손 보상의 원칙과 보험가액의 막대함이 자연스럽게 계약 상 '자기부담금'과 '책임한도액'이 발달할 수 있는 이유가 된 것이다.


  당연히 계약에 자기부담금이 붙거나 보상한도액이 적용된다면 거기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액도 달라진다. 손해액이 달라진다면 수지상등의 원칙을 따르는 보험료 또한 달라져야 한다. 그러니 보험료를 산출하는 계리사의 입장에서는 자기부담금과 보상한도액이 손해액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기부담금의 영향은 모델링 단계에서 크게 두 가지 영향으로 나뉜다. 손해액을 확률변수로 해서 모델링할 때 확률변수인 '보험자 입장에서의 손해액'이 달라진다. 당연하게도, 보험자 입장에서의 손해액은 기초 사고액에서 자기부담금을 공제한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부담금의 영향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보험자 입장에서 사고 빈도, 즉 위험률'이 달라진다. 자기부담금이면 심도에만 영향을 미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기부담금이 있는 경우 계약자는 자기부담금 이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자에게 알리지 않게 된다. 보험자에게 알려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데 굳이 자신의 사고를 보험자에게 알릴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보험자 입장에서는 발생하는 모든 사고 데이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부담금을 초과하는 사고 기록만 받게 되고, 이 때문에 위험률을 계산하는 표본 공간 자체가 틀어진다. 보험자에게 알려지는 하나의 사고는 전체 경우의 수 중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자기부담금을 초과하는 사고만 모아 놓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미보고의 영향까지 고려하게 되면 '조건부 확률'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자기부담금은 모델링 과정에서 확률변수의 크기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그 확률변수가 가지는 확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책임한도액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낫다. 책임한도액은 보상금의 한도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자가 사고를 보고하지 않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보험금의 지급사유가 발생하는 모든 사고가 보고될 것이고, 기초 사고 금액을 보험자 입장에서의 보상 금액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확률변수의 크기에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기부담금과 책임한도액이 모델링 과정에서 확률변수의 크기와 확률 자체에 미치는 영향만 잘 이해하고 있다면 기초사고가 가지는 확률 분포를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이 영향을 계량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도 보험자나 직접적으로 관여된 계리사의 입장에서는 모든 물건에 대해서 이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 간단하지만은 않고, 또한 각각의 물건에 대해서는 기초 사고가 가지는 확률분포를 만들어 내기도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확률분포라는 것은 애초에 기초 사고의 목적물이 되는 물건이 동질적이고, 또 다수 집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 계리사는 비슷한 물건을 묶어서 만든 집단에서 사용하기 좋은 '계수'를 만들어낸다. 오피스텔 건물에 대해서 자기부담금을 10% 수준에서 20% 수준으로 변경하게 되면 기대손해액이 얼마나 변하는지에 대한 비율, 혹은 책임한도액을 2배로 올리게 되면 기대손해액이 몇 배 증가하는지에 대한 비율 등을 하나의 그래프로 만들어둔다. 그 그래프를 만들어내는 집단을 어떻게 구분할지, 오피스텔과 아파트를 나눌지, 아니면 공장과 일반물건만 구분할지 등에 대한 문제는 실무적이며 계리사의 판단에 의한다. 아무튼, 이러한 계수를 만들어 놓고 개별 물건의 기초 보험료에 자기부담금, 그리고 책임한도액에 따른 계수를 곱해 해당 증권의 보험료를 산출하게 된다. LER(Loss Elimination Ratio), ILF(Increased Limit Factor)이 바로 이러한 계수들이다.


  LER이나 ILF의 개념은 재보험 계약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애초에 재보험이 손해보험의 일종이기도 하고, 재보험 계약 중에서 특히 '초과손해액재보험(XOL)'은 자기부담금과 책임한도액에 기초한 재보험계약이다. '특정 금액을 초과하는 손해에 대해서 정해진 금액만큼 보상하는 재보험계약'인데 그 말 자체가 자기부담금과 책임한도액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XOL 재보험 계약의 가격을 산출하는 여러 방법론 중 하나인 'Exposure Rating'은 LER, ILF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기본적으로 각 포트폴리오의 종목 구성에 대한 LER, ILF의 계수를 잘 만들어 놓는 것이 핵심이 된다. 그리고 이들 계수의 그래프를 공통적인 용어로 'Exposure Curve'라고 부른다.


  물론 LER, ILF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계수 적용 방법론은 기초 보험료가 정확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자기부담금과 책임한도액이 없는 기초사고액 전체에 대한 기대손해액은 잘 모델링이 되어 있고, 여기에 두 가지 요소가 미치는 영향만 고려하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한계는 있지만 다양한 자기부담금&책임한도액 조합에 대해서 빠르게 상대적인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계수의 정확성에 따라 좋은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자기부담금과 책임한도액은 이렇게 손해보험의 특성에서 기인하면서도, 손해보험의 모델링 과정을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손해보험 모델링 과정이 다른 보험 모델링 과정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들 요소를 다룰 때는 확률변수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에 이 요소가 미치는 영향을 더 정확하고 정교하게 추정하는 것이 하나의 손해보험사가 다른 손해보험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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