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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01. 2022

재보험(Reinsurance)

보험사의 보험사, 혹은 보험의 파생상품

  금융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재보험은 생소한 영역이다. 같은 산업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만큼 일반인에게는 더욱 알려지지 않은 산업, 어쩌면 평생 들어볼 일이 없는 분야가 바로 재보험이다. 재보험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금융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은행, 증권, 보험이라는 3개의 거대한 분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금융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은행, 증권에서 다루는 기초 자산에서 파생된 상품을 주로 다루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 사모펀드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은행의 기초자산인 예금, 적금을 가지고 만들어 낸 파생상품을 다루는데, 파생상품이라고 하면 언제나 복잡할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초자산에서 만들어내는 현금흐름을 다시 구조화해서 만들어 낸 상품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개인을 상대로 판매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은행 입장에서 볼 때 나갈 돈인 대출금과 들어오게 될 돈인 원리금이라는 두 가지 현금흐름을 만들어낸다. 대출금은 초기에 지출되지만 원리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들어오게 된다. 이때 자본이 많지 않은 은행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싶지만 자본이 부족해 대출을 더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자신들이 가진 대출 계약의 현금흐름을 묶어서 거대한 자본을 가진 투자은행에 이를 넘기게 되면 다시 자본금에 여유가 생겨 대출을 늘릴 수 있게 된다. 대출 계약 100건이 있다면 이 100건에 지급된 대출 금액을 투자은행으로부터 받고 자신들이 대출 계약으로부터 받게 될 원리금을 투자 은행이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출 계약은 실질적으로 개인과 투자은행 사이에서 돈이 움직이는 형태가 되지만 고객 입장에서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최초의 은행이 된다. 계약은 유지하되 실질적인 현금흐름, 리스크는 제2의 금융회사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은행은 자신들이 가진 자본금 이상의 계약을 고객과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추가로 자신들이 이전한 대출 계약의 포트폴리오가 우량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투자은행에서 웃돈을 얹어서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수수료 이익도 추가적으로 얻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산, 금융 계약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구조화하는 과정을 유동화라고 부른다. 주택담보대출의 유동화를 통한 파생상품 거래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던 시기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주택담보대출의 유동화는 파생상품의 한 가지 예시일 뿐이다. 예금이나 적금, 주식, 혹은 한 번 파생된 파생상품 그 자체도 새로운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될 수 있다. 현금흐름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그 현금흐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점이 다른 두 당사자가 언제든 거래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은행이나 사모편드가 은행이나 증권에서 파생된 상품을 주로 다루는 역할을 한다.


  파생상품은 현금흐름만 발생한다면 어떤 기초자산을 가지고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보험 계약도 당연히 파생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보험 계약은 보험료와 보험금이라는 두 가지 주된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상품이다. 그리고 이 보험료와 보험금에 대한 관점 차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파생상품을 다루는 회사가 바로 재보험(Reinsurance) 회사이다. 결국, 재보험사가 하는 일은 '보험의 파생상품을 다루는 일'이다. 보통 재보험사에 대해 소개할 때 '보험사의 보험사'라는 문구를 많이 사용한다. 물론 재보험사는 기초자산인 보험 계약을 통한 파생상품을 다루기 때문에 투자은행이 은행과의 거래를 하는 것처럼 재보험사는 보험사와 거래를 한다. 그러니 보험사의 보험사라는 말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보험사의 보험사라는 말은 재보험이 가지는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지 못한다. 보험이 애초에 위험을 인수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일반 사람들이 들을 때 보험사의 보험사라고 하면 굳이 같은 일을 두 번에 나눠서 하는 느낌이 들뿐이다. 투자은행의 주된 역할이 은행의 은행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파생상품을 다루는 일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재보험사도 그들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험사의 보험사라는 용어보다는 보험의 파생상품을 다루는 회사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반대로 재보험을 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계약을 보험상품이라는 관점에서도 물론 바라봐야 하겠지만, 파생상품을 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무엇을 먼저 따져야 하냐고 하면, 파생상품으로써의 가치 평가가 우선이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보험에 대해서 후에 따지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큰 구조를 먼저 보고 그 속을 채우는 것의 특징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투자은행이 파생상품과 예적금이라는 상품의 특징 사이에서 이 균형 잡힌 생각을 하며 사업을 한다면, 재보험사는 파생상품과 보험이라는 상품의 특징 사이에서 균형 잡힌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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