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투명성에 대해
금융을 한다는 건 어떤 상품을 다루든지 '불확실한 것'을 다루는 일이다. 올바른 과정과 선택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않고 반대로 불합리한 과정과 이에 따른 선택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가 금융을 할 때, 또 금융회사가 경영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불확실성은 인과적 논리로 대표되는 기존의 경영 방식을 철저히 부순다.
하지만 금융이 불확실한 것을 다룬다고 하여, 또 그것에 인과적인 경영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금융을 다루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한다는 건 순전히 우연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인데 우리는 우연의 산물을 금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금융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산업 중 하나이다. 그만큼 거기에는 금융만의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 나 자신의 금융을 경영하든, 금융이라는 산업에 몸담고 있는 일원으로서 금융을 경영하든, 현대 사회 안에서 금융을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는 금융을 경영하고 있다. 인과적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금융에서 우리는 어떤 경영 철학으로 그것을 다뤄야 할까.
이 지점에서 소개할만한 책이 바로 레이 달리오의 '원칙'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이면서 또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립자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건 그의 성공이나 그의 회사의 규모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금융'은 결과가 설명해주지 못한다. 우연에 의해, 또 어떤 시대적 흐름에 의해 크게 성공하기도 하고 또 한 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 금융이다. 지금껏 우리는 어떤 금융회사가 반짝 성공했다가 사라지는 것도 많이 봤고, 또 오랜 역사를 지닌 회사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도 많이 봤다. 성공 그 자체는 좋은 금융의 척도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레이 달리오를 소개한 이유는 그의 책에서, 심지어 제목에서부터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금융'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좋은 금융은 좋은 원칙만이 만들 수 있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상황에 대한 해석을 어떤 행동으로 이어나갈 것인가, 거기에 어느 정도의 자유도를 부여할 것인가, 할 수 있더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결과는 무엇을 가지고 평가할 것인가 등 금융을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그 질문에 대한 원칙을 나, 혹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나가는 것이 금융의 경영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의사결정의 범위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범위도 원칙을 가지고 설정하며, 원칙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금융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불확실하다면 우리는 반대로 더 확실한 것들을 세워나가야 한다. 불확실한 것에 불확실한 의사결정을 더하는 식의 경영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불확실한 상황에 확실한 원칙을 적용하는 것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판단하기 모호한 것에 결정론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건 행동하는 사람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될 수도, 혹은 저렇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가 원칙에 따라 확실한 판단을 내렸다고 해도 그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가 걱정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원칙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그 자체에게 돌리지 않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낸 원칙에 돌릴 수 있도록 해야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의사결정이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순간보다 더 나쁜 일은 원칙이 부재하고 책임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개인이 느끼는 부담으로 인해 아무런 의사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일이다. 의사결정이 없다면 거기엔 어떤 발전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원칙에 따라 금융을 경영할 때 한 가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요소가 있다. 레이 달리오도 자신의 책에서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고, 브리지워터를 경영할 때도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바로 '투명성'이다.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 원칙 자체를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정말 원칙에 따라 행동한 것인지, 주어진 상황이 원칙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 또 개선해야 할 지점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우리는 원칙을 고쳐나갈 수 있다. 여기에도 금융이 가진 불확실성이 기인한다. 확실한 세계에서는 무엇인가 잘못되었고, 고쳐야 한다면 그 지점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기계가 고장이라면 돌아가지 않는 부분을 찾아서 고치면 된다. 하지만 금융은 불확실하기에 원칙의 고장이 뚜렷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고장이 났을 수도 있고, 저기에서 고장이 났을 수도 있다. 심지어 여러 곳에서 얽힌 문제가 복합적으로 드러났을 수도 있다. 그러니 더더욱 그 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금융사가 특히 어려워하는 지점이 이 부분이기도 한데, 상하관계가 더 뚜렷하고 그에 따라 개인에 책임을 지우는 문화가 더 클수록 투명한 정보전달이 어려워진다. 내가 잘못한 것 같은 지점이 있을 때 그것을 우연이라는 구름 뒤로, 모호성 뒤로 숨기게 되고 금융은 특히 그게 쉬운 분야이기도 하다. 애초에 불확실하기에 그 일을 주도한 내가 뭔가 틀린 지점을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모호한 표현으로 그것을 티 나지 않게 무마하기도 쉽다. 그러니 원칙을 잘 고쳐나갈 수 있는 순환고리를 만들고 싶다면 레이 달리오의 말처럼 '과할 정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는 브리지워터에서 모든 회의를 녹화하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유하는데 그 정도로 과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금융이 주는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서 원칙에 수정이 필요한 지점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암암리에 퍼지는 소문이 공개적인 토의를 이기는 회사에서는 원칙의 개선이 만들어질 수 없다.
결국 좋은 금융을 하고, 위대한 금융회사를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원칙을 만들고, 투명한 환경에서 그 원칙을 개선해 나가며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 그것뿐이다.
그것뿐이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