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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pr 09. 2023

키워드로 보는 경제전망

2023년 두 번째 키워드, '통화전쟁'

경제 전망을 이야기할 때 한 치 앞을 본다면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금리를 사이에 둔 물가상승률과 경기침체 사이의 줄다리기다. 물가가 잡힐 때까지 경기가 무너지지 않고 고금리를 견뎌낼 것인가? 혹은 물가를 잡기 전에 경기가 무너져서 그동안 벌어놓았던 것 이상으로 내어놓을 것인가? 이 두 가지 물음 사이에 우리는 놓여 있다. 그리고 첫 번째 키워드에서 이야기한 대로 사실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위해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건 고용이다.


잠깐 복습하자면, 지금까지 세계 경제, 혹은 '세계 경제'라는 단어를 대표하고 있는 미국 경제가 고금리에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고용시장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고금리가 모든 경제주체의 비용을 턱밑까지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도 기업들은 구인난을 겪고 있고 실업률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니 세계 경제가 고금리를 버티지 못하고 흔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아마 그건 '잘 버티고 있다'는 명제를 떠받들고 있던 고용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고용 지표가 처음으로 꺾이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혹자는 너무 탄탄하던 고용이 임금 인상이 유발하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고용이 꺾이는 건 오히려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는 호재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모든 일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낙관론이다. 우리에게 고용의 추락은 물가 안정이 아니라 경기 침체다.


그 얘기는 고용 지표를 지켜보며 다음에 더 하기로 하고 지금은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 보자. 이건 한 치 앞이 아니라, 좀 더 길게 이어질 전망이다. 약간 길게 봐서, 앞으로 꽤 오랜 기간 세계 경제를 지배할 이슈는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이다. 경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 이슈가 이미 수년 전부터 떠올랐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문제가 수년 전에 떠올랐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세계 경제를 휘어잡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이제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그리고 둘의 싸움에서 지금까지 주요 격전지가 된 지점이 '무역'이었다면 앞으로는 서서히 '통화'로 장소가 옮겨질 것이다. 결국 세계 경제의 패권이라는 건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화폐를 가지는 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세계 경제의 패권이 가장 힘 있는 화폐를 가진 자에게 있다고 하면 지금의 주인은 단연코 미국이다. 미국 달러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이며, 화폐 본연의 역할인 '교환의 수단'에 있어서도 따라올 화폐가 없다. 대부분의 국가 간 거래는 당사자가 미국이 아니더라도 달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원유를 포함한 대다수의 원자재가 달러로 거래된다.


이렇게 미국 달러가 여전히 제1 기축통화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음에도 중국은 위안화의 입지를 올리려는 노력을 간간이 보여 왔다. 특히 중국이 원유를 위안화로 결제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성공했다는 점과 미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하면서 미 국채 보유 비중을 급격히 줄이고 있다는 점은 중국이 이제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움직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유 결제 시도는 위안화의 '교환 수단'으로서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고, 미 국채 매도는 달러 가치의 안정성이 주는 신뢰를 흔드는 일이다. 전 세계가 달러를 가지려고 안달이 난 이유는 달러 표시 채권을 가진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미 국채만큼 안정적인 투자처도 없기 때문에 이를 가진 주체들은 워낙 많은데 달러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미 국채의 장점도 흔들린다. 미국이 갚을 달러가 예전 그 가치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에 그러한 일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우리가 본 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라고 믿어지던 '미 국채 투자'의 실패다.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불과 몇 년 전에 산 미 국채의 가격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금융 기사를 자주 접했다면 자주 들어봤겠지만 금리와 채권 가격은 역의 관계다. 금리가 올라가면 새로 발행하는 채권 이자가 훨씬 높기 때문에 과거에 낮은 금리로 발행된 채권은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를 주는 것이 되어 가격이 떨어진다. 문제는 그 속도와 정도가 너무나 급격했다는 점에 있다.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투자한 수많은 기업, 국가들이 막대한 손실을 봤다. 그리고 그 손실은 미국이라는 나라, 즉 미국 입장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니 미 국채에 투자한 다른 나라, 그들의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리를 언제든 버릴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금리 인상의 원인이 된 미국의 막대한 양적완화도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일이었다는 데서 같은 맥락의 해석을 피해 갈 수 없다. 그 시기에 미국이 찍어 낸 엄청난 달러 또한 미 국채를 가지고 있었던 채권자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행동이었다. 보통 통화량이 늘어나면 화폐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화폐가치의 하락은 그 화폐로 표시된 채권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에게는 손실로 직결되는 일이다. 내가 달러로 받을 돈이 있는데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돈을 받아도 제 값을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달러는 워낙 강력한 기축통화였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통화량 증가가 일어나는 동안 별다른 달러 가치 하락이 있지는 않았다. 같은 시기에 다른 나라들도 통화량을 급격히 늘리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심지어 풀었던 달러를 회수하려고 할 때 달러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 당시만 봐서는 달러는 여전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미국이 보여준 행동은 다른 주체들에게 세계 경제가 흔들릴 때는 미국 달러, 미국 채권도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고 그 계산서가 서서히 도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이번 금리 인상으로 자국의 물가 안정과 자국 채권, 그리고 통화의 신뢰를 맞바꿨다. 물론 아직도 미 국채와 미국 달러가 가진 신뢰에 견줄 것은 없다. 다만, 중국이 힘을 주는 시기와 미국이 약간 흔들리는 시기가 맞물리면서 중국이 통화 전쟁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최근 들어 위안화로 결제하려는 움직임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실제로 위안화 환율은 상승하고 있다. 화폐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 나라의 경제다. 경제가 안정적이고 꾸준히 성장하는 나라의 화폐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강력한 상승 동력을 가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지금이 최적이자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중국이 전보다는 못하지만 아직 성장동력을 가지고 있고, 미국의 신뢰가 흔들릴 때, 중국으로서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 도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 과정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과를 떠나서 두 국가의 통화 전쟁은 수많은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또 수많은 이익을 만들어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화폐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세계 경제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빠른 반응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경제를 전망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조금 길게 봐서 '통화전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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