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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바구니 Apr 30. 2021

'저널리스틱'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Asia's Cauldron> by Robert D. Kaplan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지금, '저널리스틱하다'는 평가는 분명 '칭찬'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널리스틱하다'는 말이 꼭 기자들에 국한해서만 사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은 것이... 전문가의 분석을 두고도, 혹은 정부 정책이나 전략을 일컫기 위해 쓰이는 용어를 두고도 종종 저 표현이 뒤따르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의미)'이란 용어에 대한 당국의 반응인데, 얼마 전 외교부 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안미경중은 시사적 표현 아닌가요." 이어 덧붙였다. "(현실과는) 맞지가 않는다"고.


시사적(저널리스틱)인 말인데, 현실을 잘 모르는 소리다, 라는 뜻일까. 언론에 하루가 멀다하고 한국이 미중 갈등에 대처하려면 지금까지의 '안미경중'식 '양다리'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것은 사실이니, 결국은 언론 보도를 겨냥한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저널리스틱하다'는 말에 대해 서설이 길어진 이유는,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지는 속성이자 눈에 띄는 강점(!)이 바로 그렇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2014년 출간된 <Asia's Cauldron>은 남중국해를 둘러싼 지정학과 지경학을 해부한 책이다. 저자인 Robert D. Kaplan 은 미국의 기자 출신 국제정치 전문가이자 저술가로, <지리의 복수> 등 왕성한 저술을 하고 있다. 이 책이 Kaplan의 대표작이거나 역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국내에 번역(역서 제목은 <지리대전>)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 김에 2년 전 원서를 더듬어가며 읽었던 기억을 짧게나마 되살려보기로 한다.


오늘날 미중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망되는 남중국해를 다루는 Kaplan의 시선은 역사가와 여행가, 그리고 기자의 관점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하다.


저자는 우선 남중국해 '분쟁'의 양상이 과거 역사적 분쟁- 2차 대전, 냉전, 탈냉전 시기 종족분쟁이나 제노사이드 등-과는 어떻게 다른지 짚어본 다음, 남중국해에서 과연 미국과 중국의 '세력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를 탐색한다. 아래 인용문의 첫 문장이 보여주듯이 남중국해가 세계적 차원의 세력 균형이 유지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주요 거점이 되었다는 전제에서다.

The South China Sea, in other words, is now a principal node of global power politics, critical to the preservation of the worldwide balance of power. While control of it may not quite unlock the world for China as control of the Greater Carribbean unlocked the world for America, the Caribbean, rememeber – even with the Panama Canal-has never lain astride the great maritime routes of commerce and energy to the degree that the South China Sea presently does.(p49)


남중국해와 미중 갈등, 세력균형. 이런 주제들은 다분히 '이론적' 과업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책은 이 지점에서부터 흥미로워진다. 미국과 중국 외에 실제 남중국해라는 물리적 공간에 속한 '행위자', 즉 주변국가들을 하나씩 짚어보는데, 모두 저자가 직접 방문한 곳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완 등의 풍경이 마치 기행문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The Atlantic>의 기자로 상당 기간 해외 특파원으로 일했다고 하는데, 그 때의 경험인지 아니면 책을 위해 별도로 다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여행 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여행지에 대한 감상과 인상으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 저자가 이국적인 풍경을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미사여구를 동원해 묘사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각국에서 만난 정부 관계자, 전문가, 현지 주민들과의 대화를 글 속에 녹여내면서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로 엮어낸다. 그 과정에서 남중국해라는 G2 패권경쟁의 무대가 생동감을 획득한다. 또 다양한 소스로부터 조각조각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남중국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 당사국들의 대응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그 결과, 책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미에서 '저널리스틱'하다. 지금의 언론이 생산하는 콘텐츠의 역량이 기대 이하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본래 가치, 사회적 의미까지 폄하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대중에겐 접근 장벽이 높은 딱딱한 학술 논문이나,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막상 결론은 시시할 때가 많은 싱크탱크의 보고서와는 달리, 저널리스트가 쓴 논픽션(제대로 쓴)의 가치는 상당하다.


사실 저자가 이 책에서 한 접근은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글을 쓰는 기자들이 부분적으로는 하는 일이자, 또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이다. 비록 남중국해 갈등을 쓰기 위해 현장을 모두 누비지는 못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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