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이 되어 사랑받기

vs 고립된 관찰자

by 개세기

사회는 어떠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요한다.

학교, 친구, 대학, 직장, 결혼, 아이, 출산, 다시 학교..

무한히 굴러가는 챗바퀴는 한 바퀴를 돌고,

또 다시 반복되기 시작한다.


조직, 관계, 사회로부터 주어진 틀 안에

나를 끼워 맞춰가며 살아가느니

그냥 멀리서 바라보려고 한다.

그 안에 끼지 않는 그저 ‘관찰자’로서.

굳이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 존재.


“아, 너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이구나?”

누군가 물음에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그건 그냥 나의 일부일 뿐이야’

이건 ‘자유로움’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


바둑돌이 되어서 사랑받기


바둑돌인 척 연기하는 건 쉽다.

그렇게 살아왔고, 주변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고,

나도 내가 그걸 원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바둑돌 사이에서 조용히

모양을 맞춰가며 잘 살아보려 했는데..


문득 튀어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내 조각들이

끊임없이 부딪히며 소리친다.

여기서 사랑받아도, 나는 행복하지 않아!


고립된 관찰자로서


사랑받기 위해 나를 바꾸는 건 싫다.

혼자가 되더라도, 내 모양대로 살겠다.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고독해지더라도..


...


근데 나는 정말 혼자이길 바라는 걸까?

나는 그냥 틀을 부수고 싶다.

그리고 틀 밖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질감''개성'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연결.


나는 '나로서' 사랑받고 싶다


모순이다.

그리고 내 욕심이다.

나는 바둑판 밖에 나와서도

또 '바깥'의 틀에 나를 맞추며 스스로를 길들이고 있다.


이건 자유를 원하는 사람의

갚지 못하는 끝없는 대가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안도 밖도 아닌

아무것도 되지 않을래.

텅 빈 공간에는 무한한 가능성만 존재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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