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피디아

<필로미나의 기적>: 신은 용서했을지 몰라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by 린나이


"그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감췄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의 엔딩에서 주인공 필로미나는 자신의 아이를 강제로 입양 보내고 평생을 기만해 온 수녀를 용서한다. 관객들은 그녀의 위대한 인류애에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차갑게 식어가는 가슴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라면 필로미나처럼 할 수 없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1.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은밀한 거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신의 은총으로>가 겹쳐 보였다. 두 영화 모두 가장 거룩해야 할 성역(종교)이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 가장 약한 자들을 희생양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녀들은 미혼모의 아이를 돈을 받고 팔아넘겼고, 엄마가 찾아올 때마다 아이가 죽었다거나 기록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화된 범죄'였다.




2. 사소한 불화와 악의적 기만의 차이




나는 꽉 막힌 사람이 아니다. 살면서 겪는 가벼운 불화, 실수로 인한 상처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용서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하지만 죄를 숨기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은 다르다. 그것은 '악'이다. 영화 속 늙은 수녀는 끝까지 뻣뻣했다. 그녀는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이 신의 뜻이라 믿었다. 반성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용서가 과연 성스러운 것일까? 나는 그것이 도리어 정의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3.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용기




영화 속 기자인 마틴은 필로미나 대신 수녀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나는 필로미나의 성스러운 용서보다, 마틴의 인간적인 분노에 더 깊이 공감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덮어두는 것이 '미덕'으로 포장되는 세상은 위험하다.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이 겪은 혼란도 결국 누군가가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을 말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필로미나의 평화를 존중하지만, 그녀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겠다. 나는 끝까지 기억하고, 따져 묻고, 사과를 받아내야겠다. 신이 그들을 용서하든 말든, 인간인 나는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Editor's Note




내가 쓰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필로미나보다 마틴을 닮았으면 좋겠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퉁치고 넘어가는 평화보다는, 시끄럽더라도 진실을 파헤쳐 사과를 받아내는 불편한 정의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용서는 가해자가 무릎을 꿇었을 때, 그때 비로소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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