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소믈리에

[신드롬 소믈리에 Ep. 7]

by 린나이

인생은 생방송이 아닙니다. 제발 '오디오' 좀 끄세요.

부제: 3초의 침묵을 방송사고로 착각하는 70대 전직 라디오 PD에게


(딸랑-. 문이 열리자마자 경쾌한 휘파람 소리와 지팡이로 바닥을 딱딱 두드리는 박자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백발을 멋지게 넘긴 70대 남성 손님. 자리에 앉으면서도 "아~ 마이크 테스트, 원 투, 아, 날씨 좋고~"라며 쉴 새 없이 중얼거린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리듬감 넘치는 분이 오셨군요.

그런데 손님, 입으로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손가락으로는 테이블을 두드리고.

단 1초도 소리가 비는 걸 견디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입니다. 주변 공기가 꽤나 피곤해 보이는군요.


#1. 손님의 증상


"소믈리에 양반, 내가 좀 유난스럽지? 직업병이야, 직업병.

내가 왕년에 라디오 PD만 40년을 했어. 라디오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바로 '데드 에어', 침묵이야.

방송 중에 3초 이상 오디오가 비면 그건 방송사고라고! 청취자들이 주파수 돌린단 말일세.

그게 몸에 배어서 그런가, 은퇴하고 집에 있는데도 집안이 조용하면 미치겠어.

아내가 설거지하다가 잠깐 멈추면 내가 바로 치고 들어가지.

'아~ 우리 여사님, 그릇 닦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오늘 점심 메뉴는 뭔가요? 기대됩니다!'

친구들이랑 등산을 가도 그래. 산속이 조용하면 불안해서 내가 계속 떠들어.

'자, 새소리 좋고! 공기 맛 좋고! 김 사장, 자네 무릎은 좀 어떤가?'

그런데 다들 나보고 좀 닥치래.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고.

심지어 손주 녀석들은 나만 보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써버려.

내가 뭘 잘못했나? 난 그냥 분위기 안 처지게 띄워주는 건데 다들 왜 날 피하나? “


#2. 소믈리에의 진단


(손님이 말을 멈추지 않으려 계속 '음~, 아~' 추임새를 넣는 것을 보며 차분하게 물 한 잔을 건넨다.)


PD님, 지금 여기는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닙니다. 큐 사인은 이미 10년 전에 꺼졌어요.

당신의 진단명은 [만성 청각 진공 공포 증후군]

(Chronic Audio Vacuum Horror Syndrome)입니다.

당신은 침묵을 '여백'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빨리 수습해야 할 '재난'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대화 중간에 말이 끊기면, 당신의 뇌에서는 사이렌이 울리는 겁니다.

'비상! 방송사고다! 아무 말이나 해서 이 구멍을 메워라!'

그래서 당신은 멘트를 하는 게 아니라, 소음으로 공간을 미장질하고 있는 겁니다.

아내와 친구분들이 귀를 막는 건, 당신의 말이 대화가 아니라 해설이기 때문입니다.


#3. 테이스팅 노트


이 증후군의 맛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믹서기 소리처럼 요란하고 어지럽습니다.

재미있는 건, 당신은 침묵을 '소통의 단절'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당신의 그 끊임없는 오디오가 진짜 소통을 단절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어야 선율이 되듯, 대화에도 침묵이 있어야 생각이 머물 자리가 생깁니다.

당신이 3초의 침묵을 못 견디고 훅 치고 들어오는 순간, 상대방은 하려던 말을 삼키게 됩니다.

당신은 '방송사고'를 막으려다, 인간관계라는 진짜 '대형 사고'를 치고 있는 셈이죠.

지금 당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건, 주파수가 안 맞아서가 아니라 당신의 볼륨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4. 오늘의 처방


당신의 입과 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평화를 위한 음소거 처방입니다.


지금까지는 3초가 비면 사고라고 생각했죠?

이제부터는 '3초를 쉬지 않고 말하면 사고'라고 뇌 설정을 바꾸십시오.

누군가 말을 끝내면,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뒤에 입을 떼십시오. 그 3초의 정적은 방송사고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시간'입니다.


집안일하는 아내에게, 밥 먹는 손주에게 제발 중계방송 좀 하지 마십시오.

"아~ 밥알이 탱글탱글하네요!" 같은 멘트 대신, 그냥 조용히 씹어 드십시오.

당신의 인생은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입니다. 내레이션 없이 그냥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하루에 딱 10분, 아무 소리도 안 나는 방에 앉아 계십시오.

처음엔 불안해서 미칠 것 같겠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침묵은 빈 것이 아니라, 가장 편안한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요.

이제 제발, 오디오 좀 끄고 나가주십시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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