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피디아

<23 아이덴티티>: 고통이 건축한 24번째 성역

by 린나이


"상처 입은 자가 더 진화된 것이다."




이 영화는 나에게 공포 스릴러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했을 때, 영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슬픈 다큐멘터리다.




1. 조각난 것이 아니다, 증식한 것이다




사람들은 주인공 케빈을 '미친 사람'이라 부르고, 그의 내면에 있는 23개의 인격을 '병(Disease)'이라 진단한다. 하지만 작가의 눈으로 본 케빈의 내면은 병들지 않았다. 오히려 치열하게 생존했다. 그의 인격들은 단순한 자아 분열의 파편이 아니다. 학대라는 거대한 공포로부터 본체인 '케빈'을 보호하기 위해, 상황에 맞춰 등판하는 23명의 '경호원'들이다. 누군가는 규율을 정하고(데니스), 누군가는 모성으로 보듬으며(패트리샤), 누군가는 고통을 모르는 순수로 도피한다(헤드윅).




2. 괴물, 혹은 구원자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24번째 인격, '비스트(The Beast)'는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괴물은 케빈에게 유일한 '신(God)'이자 '구원'이다. 인간의 몸으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초월하기 위해,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이 되는 길을 택했다. 벽을 타고 쇠창살을 휘게 만드는 괴력은 초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처절한 의지가 만들어낸, 슬프도록 기이한 육체의 진화다.




3. 흉터는 힘이다




영화는 케빈과 여주인공 케이시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학대의 기억'이다. 비스트는 흠결 없는 소녀들을 제물로 삼지만,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케이시만은 살려 보낸다. "너는 고통을 아는구나. 너는 다르구나." 그 순간,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상처 없는 깨끗한 영혼인가, 아니면 상처로 얼룩져 단단해진 영혼인가. 이 영화의 정서는 공포가 아니라 '위로'다. 부서지고 깨진 우리 모두가 사실은 누구보다 강인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위로.





Editor's Note


나의 드라마도 이 지점에서 출발하고 싶다. 단순히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23 아이덴티티>는 그 가능성을 가장 완벽한 연기로 증명해 낸 참고서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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