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시그널이 없으면 제스처도 없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인터뷰는 일종의 합법적인 관찰이다. 상대의 문장을 채집한다는 명분 아래, 나는 그의 눈빛과 손등의 힘줄, 그리고 말 사이의 공백까지 샅샅이 훑어내곤 한다.
창밖으로 늦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불던 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액체'에 가까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한겨울의 깊은 바다처럼 차분하고, 흐트러짐 없는 정적인 분위기. 그가 내 앞에 앉았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내 안의 뜨거운 불길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연애 세포 따위는 말라비틀어졌다고 믿었다. 일과 마감,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갱년기의 징후들 속에서 내 마음은 오랫동안 햇빛이 들지 않은 서늘한 그늘 같았다. 하지만 봄이 되면 그 음침한 담 밑에도 작은 풀잎새가 한 떨기씩 돋아나기도 하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까마득히 잊고 살던 여자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고요한 심연 같은 연하 남자를 단숨에 좋아하게 될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내내 그는 완벽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정갈했고, 태도는 깍듯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선을 넘지 않았고,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그저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했다.
나는 그를 관찰하며 생각했다. 이 남자는 아마 평생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었거나, 혹은 그럴 의지가 없는 부류다.
'여자가 먼저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는 이상,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아무런 제스처가 없는 게 현실 아닌가 싶었습니다.'
노트 귀퉁이에 나만 알아볼 수 있게 갈겨쓴 문장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남자들이 있다. 깊은 호수처럼 가만히 앉아, 누군가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켜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은 매력적이지만 오만하고, 다정해 보이지만 냉정하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일부러 펜을 내려놓고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적인 질문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시그널을 던져볼 차례였다.
"오늘 인터뷰, 질문이 좀 많았죠? 사실 제가 궁금했던 건 따로 있었거든요."
나의 도발적인 어조에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굳게 닫혀 있던 호수의 표면에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진 순간이었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내 뺨의 열기를 느끼며(그게 설렘인지, 아니면 시작된 갱년기의 예고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터뷰비 말고 밥으로 받고 싶은데. 어때요?"
정적이 흘렀다. 시베리아 같은 그의 눈동자 속으로 사하라의 열기를 품은 나의 제안이 침투했다. 여자가 먼저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내 가설은, 그날 그가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끌어당기는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시베리아 운전석과 사하라 조수석의 서막이 올랐다. 물론,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보낸 그 '강력한 시그널'이 훗날 갱년기의 화룡점정이 되어 그를 활활 태워 먹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