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소믈리에

[신드롬 소믈리에 Ep. 14]

by 린나이

그건 '중립'이 아니라 '무임승차'입니다.

부제: 뉴스는 안 보지만 나라님들 욕은 하고 싶은 쿨한 당신에게


(딸랑-. 문이 열리고 60대 남성 손님이 들어온다. 스마트폰으로 짧은 영상(쇼츠)을 휙휙 넘기며 들어오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혀를 찬다. 세상 통달한 듯한 냉소적인 표정이 특징이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시니컬하고 쿨한 분이 오셨군요. 방금 스마트폰을 보며 혀를 차시던데, 표정만 보면 나라를 구하려는 우국지사 같기도 하고, 세상만사 다 귀찮은 도인 같기도 합니다.


#1. 손님의 증상


"소믈리에님, 저는요, 정치병 환자들이 제일 싫어요. 좌파니, 우파니 싸우는 거 보면 진짜 미개해 보이지 않나요? 저는 그런 거 딱 질색이라 뉴스도 안 봐요. 머리 아프잖아요.

그런데 이건 진짜 나라가 망조가 든 게 확실해요. 방금 유튜브 쇼츠를 봤는데, 요즘 정치인들 하는 짓거리가 아주 가관이더라고요? 섬네일만 봐도 딱 답 나오잖아요. 사람들이 '다 똑같은 놈들이다'라고 하는데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친구가 저보고 '그럼 투표는 했냐, 그 법안 내용은 읽어봤냐?'라고 꼰대질하던데, 제가 그걸 왜 봅니까? 안 봐도 뻔한데. 저는 정치색 같은 거 없이 아주 객관적으로 까는 거예요. 솔직히 저처럼 치우치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이 진짜 깨어있는 시민 아닌가요? 근데 왜 사람들은 저보고 '무식하다'라고 할까요? 전 그냥 더러운 물에 발 담그기 싫은 건데. “


#2. 소믈리에의 진단


(손님의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자극적인 섬네일의 '사이버 래커' 영상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손님, 당신은 깨어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겁니다. 당신의 진단명은 [팩트 알레르기성 무지성 냉소 증후군] (Mindless Cynicism Syndrome by Fact Allergy)입니다.

당신은 "정치를 모른다"라고 말하면서 입으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정치를 욕하고 있습니다. 이건 '도덕적 우월감'을 공짜로 얻고 싶은 심리입니다. 뉴스를 읽고, 맥락을 파악하고, 잘잘못을 가리는 건 '지적 노동'이 필요하거든요. 아주 귀찮고 머리 아픈 일이죠.

그래서 당신은 그 노동을 생략하고 "다 똑같은 놈들이야"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겁니다. 이 한마디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할 필요도 없이, 당신은 저 진흙탕 속의 정치인들보다 '고상하고 깨끗한 심판자'의 위치에 설 수 있으니까요.


#3. 테이스팅 노트


이 증후군의 맛은, 인스턴트 불량식품 같습니다. 자극적이고 씹기 편한데 영양가는 없죠.

당신이 팩트를 보지 않는 건 중립이 아닙니다. 그저 '판단 유보'라는 탈을 쓴 '지적 태만'일뿐입니다. 당신이 욕하는 그 정치인들보다 더 나쁜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당신처럼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욕만 하는 유권자'입니다.

그런 무관심과 냉소가, 엉망인 정치인들이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주니까요. 당신은 '더러운 물에 발 담그기 싫다'라고 했죠?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그 더러운 물을 방치해서 썩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입니다.


#4. 오늘의 처방


당신의 깃털처럼 가벼운 비판에 무게를 실어줄 처방입니다.


오늘부터 원칙을 세우십시오. ‘기사 본문을 읽지 않은 자, 욕도 하지 말라.’ 제목이나 섬네일만 보고 욕이 나오려고 하면 입을 때리십시오. 최소한 기사 전문을 읽고, 팩트 체크를 한 뒤에 욕하십시오. 정당한 비판은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다 똑같은 놈들이다"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말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놈은 없습니다. '조금 덜 나쁜 놈'과 '몹시 나쁜 놈'이 있을 뿐입니다.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 내는 것이 시민의 의무이자 진짜 '어른의 시각'입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난 중립적인 게 아니라, 복잡한 건 생각하기 싫고 그냥 욕이나 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싶어." 그렇게 인정하면 최소한 '위선자'는 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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