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청바지의 눈물, 그리고 소외된 '몸'들에 대하여
"패션은 지구를 아프게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패션의 세계에 입장조차 못 하게 막는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든 건, 내가 입는 청바지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나는 더 거대한 질문과 마주했다. 1장의 목차는 이렇게 묻는다. "노인은 패션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가?" "장애인은 의복과 패션을 누릴 수 있는가?" "날씬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 책은 단순히 '옷'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옷을 입는 '사람', 그리고 패션 산업이 그동안 지워버린 '소외된 몸'들에 대한 사회과학 보고서였다.
1. 환경을 파괴하는 패션, 사람을 차별하는 패션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드는 막대한 물과 오염은 지구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구제 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구제 옷을 입는다고 해서 패션이 가진 '차별의 속성'까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패션은 젊고, 비장애인이며, 날씬한 백인 혹은 그 기준에 맞춘 모델들을 위해 디자인된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기성복은 불편한 족쇄이고, 노인의 주름진 몸은 감추어야 할 대상이 된다. 나는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인 척했지만, 정작 패션이 규정한 좁은 정상성 안에 안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2. 보디 포지티브? 다양성의 시대?
책은 '보디 포지티브(내 몸 긍정하기)' 운동이 정말 긍정적인지, 흑인 모델의 등장이 진짜 다양성인지 날카롭게 파고든다. 단순히 뚱뚱한 모델 한 명을 세워놓고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해"라고 말하는 패션 업계의 위선을 꼬집는 것이다. 진정한 다양성은 쇼윈도에 마네킹 하나 바꾸는 게 아니라, "누가 아름다움을 정의하는가"라는 권력을 해체하는 데 있다. 패션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표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3. 패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결국 이 책이 묻는 건 이것이다. 패션은 혐오와 차별을 강화하는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경계를 허무는 도구가 될 것인가. 나는 옷이 좋다. 하지만 내 옷장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쓰레기장이 되거나, 누군가를 배제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길 원치 않는다. 환경을 위해 구제 옷을 입는 마음으로, 이제는 나와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의 패션에도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혹시 몸이 불편해지더라도 당당하게 멋을 부릴 수 있는 세상이 진짜 '멋진' 세상일 테니까.
Editor's Note
작가로서 캐릭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늘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 나부터 그 편견을 깨야 하지 않을까. 주름진 노인이 패션 아이콘이 되고, 장애를 가진 인물이 가장 힙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 드라마.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