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친은 갱년기

7화. 두 장의 영화표와 닫힌 마음

by 린나이

제작사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 홍보팀 직원이 봉투 하나를 건넸다. 곧 개봉을 앞둔 영화의 예매권 두 장이었다. 무심코 시놉시스를 훑어보았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남겨진 자들의 애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후에 그를 만났을 때, 나는 테이블 위로 봉투를 슬쩍 밀어주었다.

"이거, 봐요. 인터뷰 갔다가 영화표 두 장을 받았거든요."

그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봉투 안의 예매권을 꺼내 유심히 살폈다. 그의 깊고 서늘한 눈매가 포스터의 활자들을 천천히 쓸어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내심 이어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번 주말엔 시간이 어때요? 저녁 먹고 같이 보러 갈까요? 같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제안 말이다.

"아, 감사합니다. 이 감독 전작도 좋았는데. 잘 볼게요."

그는 반듯하게 접힌 예매권을 자신의 지갑 속에 정갈하게 집어넣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나는 찻잔을 든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잘 볼게요'라니. 두 장을 주었는데 같이 보자는 말이 없다면, 대체 나머지 한 장은 누구와 쓰겠다는 뜻인가. 아니, 그전에 이 상황에서 나에게 동행을 제안하지 않는 그 지독한 무심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명치끝에서부터 익숙한 열감이 확 솟구쳐 올랐다. 갱년기의 불길은 땔감을 가리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섭섭함조차도 이 시기의 나에게는 자존감을 태워 먹는 거대한 산불로 번지곤 했다. 내가 그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이성이 아니어서 같이 영화를 보기 싫은 걸까?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김칫국을 마신 건가?

입을 꾹 닫고 창밖만 바라보는 나의 싸늘한 기류를 그제야 눈치챘는지, 그가 지갑을 다시 만지작거리며 슬며시 말을 건넸다.

"저기,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보러 가실래요?"

눈치는 없어도 상황 파악은 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내 안의 꼬인 자존심은 이미 브레이크가 고장 난 상태였다.

"아니요, 혼자 보세요. 전 개봉 전에 이미 내용 다 들어서 별로 감흥 없거든요."

"표를 주실 때 같이 보자는 뜻인 줄 제가 미처 생각을…."

"진짜 바빠서 그래요. 친구랑 보든가 하세요."

나는 끝내 뾰족한 말을 쏘아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특유의 정적인 성격 탓에 나를 적극적으로 붙잡지도 못했다. 그 머뭇거림이 내 속을 한 번 더 뒤집어 놓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늘한 초저녁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불쑥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고작 영화표 두 장 때문에 나이 마흔 훌쩍 넘어서 스무 살처럼 토라지다니. 하지만 억울함의 기저를 파고들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늙어가는 내 몸에 대한 비애감이었다.


죽음이 그 계절을 열었다.

내 안의 청춘이, 여성으로서의 어떤 물리적인 가능성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그 섬뜩한 감각. 그 미세한 상실의 죽음이 이 불안하고 예민한 갱년기라는 계절을 열어젖힌 것이다. 그가 나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소한 의심 하나가 내 존재 전체를 흔들 만큼, 나는 지금 지독하게 연약한 계절을 통과하고 있었다.

가방 안에서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영화, 혼자서는 안 볼 겁니다. 바쁜 거 끝나면 꼭 같이 가요. 기다리겠습니다.'

시베리아같이 무심하던 남자가 보내온, 투박하지만 단단한 위로. 나는 길거리에 서서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이 그 서늘한 진심 앞에서 속절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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