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다품종 대량생산

행복은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아닙니다.

by 훌륭한어른이
미끼를 겨냥하는 짓을 멈추라고, 에피쿠로스는 조언합니다. 아예 사격을 관두는 것이 훨씬 낫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며, 올바른 마음가짐만 갖춘다면 아주 적은 양의 치즈만으로도 소박한 식사를 성대한 만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쾌락은 더 증가할 수 없으며 (눈부시게 밝은 하늘이 그보다 더 밝아질 수 없듯이) 그저 다양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 -


내 맘대로 학교 스케줄을 짜서 아침에 늦게도 일어나 보고, 빨리 집에도 가보고 싶었다.

마침내 대학생이 되었다. 그저 그랬다.


어서 전역해서 내가 먹고 음식을 마음껏 먹고, 민간인으로서 종일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마침내 전역을 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빨리 취업해서 돈 벌고, 돈 모으는 재미도 느끼고, 사고 싶은 거 맘껏 사고 싶었다.

마침내 직장인이 됐다. 그냥 살 맛이 안 났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고요한 바다에 웅장한 고래가 멋지게 하늘을 날다 수면 아래로 돌아가는 그 찰나, 거대한 물결이 첨벙 일고, 수 억 개의 물방울 분자가 햇빛 아래 반짝이는 순간의 장면과 같았다.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행복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오는 동안 짜릿하게 기뻤던 경험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딱히 없었다. 행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미건조하고 심심한 인생이었다.


년을 잘 버티고 노력해서 소망을 이루고, 어느정도 밥벌이를 하면 행복할 거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그 지점에 도달했을 덤덤했다. 덤덤해서 오히려 놀랐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가.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 않은 나를 보며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나이가 들며 더욱 짙어지는 행복의 검은 때였다. 예전에는 행복의 기준이 미래의 '나'에게 있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면, 내가 전역을 하면, 내가 취업을 하면...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기준이 점점 타인으로 이동했다. 나보다 일을 더 잘하는 동기, 나보다 더 돈 잘 버는 동생, 어린 나이에 성공한 유투버, 예쁜 인테리어로 꾸며놓은 집에 사는 가족, 화려한 외모와 말발을 가진 연예인. 행복의 시선이 점점 좁아지고 멀어졌다. 느끼고 싶었던 행복이 어쩌면 나의 세상을 넘어 그들의 세상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식을 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돈으로 행복의 바닥을 다지고 싶었다. 저녁 10시 반. 미국 시장 개장. 쉴 틈 없이 변하는 숫자들. 그 숫자가 행복 지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았다. 수익률이 빨간색이었다. 돈을 벌었다. 며칠 동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정작 달라질 건 없었다. 그래서 행복도 정작 달라질 건 없었다. 주식도 결국 내 행복의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익률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얼마 내어주지 않았던 행복도 모자라 비축해 두었던 행복까지... 아주 곱절로 앗아가 버렸다. 미안했는지 피곤함, 집중력 하락, 불안, 후회를 툭 던져주고 가 버렸다. 아주 얄미웠다.)


행복을 좇았다. 그러나 중간에 길을 잃고 불안이 따라왔다. 빨리 돈 벌어서 집 사야 하는데, 통장에 억이 넘게 찍혀야 하는데, 먼저 승진한 동기와의 월급 차이만큼 한 달에 이만큼 벌어야 하는데. 더 많이 가져서 더 많이 누리고 빨리 행복해지고 싶었다.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는 행복을 갈망할수록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냉랭해졌다.


한동안 미국 주식을 하느라 늦게 잠에 들었다. 기본 취침시간이 새벽 1시였다. 항상 수면이 부족했다. 눈을 뜨는 동안 하품을 달고 살았다.


어느 날, 몸이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며에게 강도 높은 시위를 했다. 그날따라 유독 정신이 멍하고, 손이 떨렸다. 퇴근하고 나니 속이 울렁거렸다. 무서운 신호를 모른척할 수 없었다. 저녁 10시. 일찍 잠에 들었다. 자다가 중간중간 깨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날 밤은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났다. 상쾌했다. 개운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에는 자는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 몹시도 아쉬웠다. 약간 무거운 마음과 가뿐해진 몸으로 세수하고 옷을 입고 출근을 위해 밖을 나섰다.


그런데 평소와는 뭔가가 달랐다. 전혀 다른 세상이 보였다. 건물 색깔이 선명했다. 하늘 위로 떠다니는 구름이 예쁘게 드리웠다.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나무 사이사이로 참새들이 날아다녔다. 피곤함에 묻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 이건 행복이다.


돈을 향해 좇을수록 행복하지 않았던 내게, 그래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던 내게, 하늘에서 넌지시 건네준 힌트였다. 집 밖의 풍경이 어제와 확연하게 달라질 리 없었다. 단지 내가 변한 것일 뿐. 내가 변하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그 주 주말, 서울숲으로 향했다. 꽃을 보았다. 꽃을 자세히 관찰했다. 예뻤다. 휴대폰 화면에 나오는 예쁜 사진보다 편안하고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느꼈다. 이건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평화롭게 산책하는 가족을 보았다. 단란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것 또한 행복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행복 방식에 오류가 있었던가?


그렇다. 나는 행복이란 대형 프로젝트 수주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노력하고 기다리다가 혹은 운이 좋아 큰걸 하나 마침내 터뜨려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로 얻은 행복이라 해서 대단할 건 없었다. (다른 이에게 대형이 아닐지라도 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돌이켜보면 대형 이벤트의 행복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게다가 이외의 나머지 시간은 짧은 행복을 위해 희생된 아까운 자투리가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나는 행복의 다품종 대량생산을 추구하고 있다. 주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행복을 다량 채굴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올리브유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 날씨가 좋아서 행복. 바람결을 따라 나뭇잎이 신나게 춤을 춰서 행복. 칼퇴해서 행복. 새로 산 바디워시 향이 좋아서 행복.


그렇다고 사람이 항상 행복할 순 없다. 중간중간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일이 있다. 하지만 행복과 행복 사이가 촘촘하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빨리 쫓을 수 있다.


우연히 들었던 방송인 최화정씨의 말이 행복과 연계되어 생각이 피어올랐다. "젊은 지 몰라야 젊음이라고."

이 말을 듣고 깨우쳤다. 아! 지금 내가 얼마나 좋은 지 모르고 살았구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살았구나!


우리는 좋은 걸 좋은 지 잘 모르고 산다. 내 옆에 있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한 건 없다. 모두 스칠 뿐이다. 젊음, 건강, 돈, 가족, 친구 모두 그냥 스칠 뿐이다. 이제 나는 좋은 걸 좋은 지를 알고 살기로 했다. 그래서 옆에 잡히고 보이는 소중한 것들을 행복 주머니에 듬뿍 담으려 한다.


나는 지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내 옆에 샤프가 있다. 내가 만 원 넘게 주고 산 멋진 디자인의 샤프다.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을 수 있는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키보드 덕분에 다량의 텍스트를 쉽게 입력할 수 있다. 행복 포인트를 쌓았다.


모두 다 멈춰라! 얼음! 지금 여러분 주위에 무엇이 있는가? 소중한 지 몰랐던 행복의 대상을 찾아보자! 찾았는가? ----- 찾았다면 저도 덕분에 더더 행복합니다.^^ ------

이전 04화성숙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