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없는 행복한 과거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 되찾은 선물
어른이 된다는 건 언제나 우리의 온화했던 유년기에 대한 배신이고, 하지만 바로 그것이 유년기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이다. 유년기는 배신당하기 위해 존재하고 바로 그 배신으로부터 그리움이 태어난다. 그런 그리움은 우리에게 언젠가, 아마도 삶의 마지막에, 젊음의 순수함을 되찾을 힘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
길거리에서 어린아이들을 보면 '에구 너희들은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아이들은 잘 웃고, 잘 먹고, 엄마 아빠 말 잘 듣기만 해도 최고의 어린이라고 칭찬받는다. 나는 아무리 용을 써도 그럴 일이 없는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 아빠' 한마디에 엄마 아빠가 슈퍼맨 같이 출동해 해결해 준다. 내가 엎지른 일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내가 슈퍼맨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나 막상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숙제도 해야 했고, 태권도 학원을 다녀야 했고, 마음에 맞지 않은 친구와 말다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찌든 지금의 내가 돌아봤을 때 그 시절 나는 행복했다. 유년기를 벗어나 눈앞의 시간을 정신없이 보낸 후 걸어온 길이 궁금해 잠시 뒤돌아 봤을 때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 시절 나는 참 몰랐다.
꼬마였던 내가 중요하지만 알 길도 없었고, 차라리 몰라서 다행이었던 건 앞으로 나아갈 삶이 절대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 보고 있는 세상과 만나는 사람들이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나와 함께할거라 착각했다. 하루하루가 원래 그러하게 설계되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에게 결국 배신 아닌 배신을 당했다. 어른이 되면서부터.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대상은 그리움과 희망이 혼재되어 있다. 노력한다면, 어쩌면 운이 따른다면 그리움의 대상을 재현하고 되찾아 올 수 있더라는 기대를 갖는다. 돈, 맛있는 음식, 여행, 지식 등 잠시 잃어버렸지만 밤새 보물찾기 하듯 샅샅이 찾다 보면 심술 난 누군가가 감춰놓았던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과거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복구 가능성이 희박한 대상일수록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그리움은 짙다. 행복했던 그 시간의 공간, 분위기, 대화, 젊은 엄마, 아빠를 더 이상 원래 그대로 소환할 수 없다. 이미 그 공간은 허물어져 다른 건물이 올라가 있고, 엄마 아빠는 이미 청춘의 모습을 일찍이 뗀 노년기로 접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돌아가기에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알아가는 과정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아 순수하게 세상을 담았던 눈이 탁해졌다. 생각의 각도가 휘어졌다. 각진 생각의 각도로 뱉어내는 말의 모양이 어그러졌다. 어른이 된 내가 꼬마 시절로 돌아가 행복한 시절을 다시 재현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안타까움을 깨달을수록 그리움이 아프게 태어난다. 그럴수록 유년기는 아름답게 포장된다.
"나이가 들더니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어."
글을 쓰며 그 말이 새삼스럽게 아프고도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신체 기능이 퇴화되어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능력이 무너진 노년. 하나 둘 낙엽이 떨어져 앙상한 고목이 된 모습이 안타깝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단순히 늙었다기보다 유년기로 돌아가고 있다 말할 수 있겠다. 아이처럼 도움이 필요하고, 판단력과 기억력이 어려지는 인생의 피날레.
젊음이 지탱해 오고 무심결에 자랑해 오던 신체 표면과 기능이 내리막길을 걸어 지면까지 다다랐을 무렵에야 비로소 인간은 순수해진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유년시절의 모습과 더욱 가까워진다. 모진 세월 돌고 돌아 참 오래도 걸렸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시절 순수했던 유년 시절.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야 그리워했던 그 시절과 조우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에 마침내 순수함이 다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