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쇼핑

수 많은 인생 중 나만의 인생 고르기

by 훌륭한어른이
인지혁명 이래 사피엔스에게는 단 하나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가능성 가운데 어떤 것을 문화적으로 선택하느냐라는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 사피엔스(유발하라리) -


이 문장이 내 머리를 두드렸다. 내가 왜 이걸 모르고 있었을까?


나는 주입형 교육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했을 만도 했건만 전혀 그런 적이 없었다. 선생님에게는 귀찮게 하지 않는 괜찮은 학생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창의적이고 깊은 앎을 추구하는 한 지식인으로서는 전혀 괜찮지 않은 태도였다.


그 바람에 모든 사피엔스가 동시에 같은 속도로 진화했다고 착각했다. 교과서에 적힌 딱 떨어지는 숫자처럼 모두가 동시에 불을 사용하고, 돌을 다듬고, 무리를 짓고, 농경 사회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교통수단과 문자가 없었던 먼 옛날, 먼 지역에 있는 사피엔스가 단기간에 문명을 퍼뜨리고 교류했을리 만무하다. 사피엔스는 각자의 공간에서 가지각색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저명한 누군가의 선택으로 그 중 하나의 삶의 형태가 소개되었을 뿐이다. (1억년 후, 후세대가 현재 우리를 소개한다면 피쳐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어르신 대신 챗GPT로 업무 명령을 내리는 실리콘밸리 직원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삶 중 어떤 것을 선택하여 보여주는 지와 관계 없이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담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미디어나 도서를 통해 다양한 삶을 접한다. 대게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부러움을 살만하다. 사업이 번창하고, 돈을 많이 번다.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다. 이른 나이에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다. 수려한 외모 덕분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칭송 받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기죽을만한 인생이다.


그들을 보며 나는 불안했다. 그들처럼 빨리 있어보이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데.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해야 하는데. 잘 나가야 하는데. 존경심을 받아야 할텐데. 왜 나는 그걸 타고나지 못했을까. 타고나지 못했다면 왜 나는 노력하지 않는가. 왜 이리 나는 못났을까.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모습은 대중에게 보여주기 좋은 수 많은 인생들 중 하나일 뿐이다. 출판사와 제작자의 선택으로 대중에게 소개되었을 뿐이다.


공원에 장미가 심어져 있다. 그 옆에 팻말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팻말을 보고 장미에 잠시 집중한다. 옆에는 들꽃이 피어있다. 따로 팻말이 없어 사람들이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들꽃도 예쁘다. 장미와 들꽃 모두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엄연히 지구의 관점에서 흙에 뿌리를 내려 햇볕을 받으며 자라는 두 식물 중에 뭐가 잘나고 못날 것도 없다. 다만, 사람들은 팻말을 보고 장미에 잠시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리고 떠난다. 장미가 예쁘다며 감탄했던 사람도 옆에 계속 머물지 않고 갈 길 간다. 사람이 난 자리에 장미와 들꽃 모두 묵묵히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는 각자 삶을 이어나간다. 모두가 장미 같은 인생일 필요가 없다. 이 세상 꽃이 전부 장미여서는 안된다. 꽃이 다양해야 생태계가 건강하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우리 스스로 천편일률적인 삶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모두 이름을 지을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다양한 들꽃이 있다. 이름 없는 들꽃이라해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구에 뿌리를 내린 모든 식물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고 모두가 소중하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무수히 다양한 삶이 있다. 모든 삶이 각자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 삶 중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만의 것이 있다. 나 다운 삶을 고르면 된다.


인생은 쇼핑이다. 쇼핑한 삶으로 나의 역사를 써내려가면 된다.


잠깐! 그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쇼핑을 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인생 쇼핑에서 돈은 시간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돈처럼 빌리거나 저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물건을 골라야 한다. 반품 후 새로운 쇼핑을 하기엔 시간 위험부담이 크다.


그럼, 성공적인 인생쇼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너 자신을 알라'에 있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정의내리는 '나'를 '나'로 정의내리지 않아야 한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꾸준히 나에게 질문을 해보자. 너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에 큰 행복을 느끼는지. 자문자답을 통해 나를 알아보자. 그리고 즐겁게 쇼핑을 해보자!


이리저리 인생 백화점을 둘러본다.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일반 백화점과는 다르게 가격이 없다. 가격은 훗날 구매자의 인생 발자취에 따라 책정된다. 너무 많은 인생이 본인을 골라달라 아우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요!', 특별하게 빛나는 나만의 인생이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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