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성장에 대하여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사랑에도 나이가 있다.
사랑도 사람 키처럼 자라고 성장한다.
-강병인 글씨로 보는 나태주 대표 시선집 (나태주)-
어린 사랑은 뜨겁지만 응석쟁이다. 심장이 더워 가만히 있기 힘들고 그 모습을 상대가 알아주기를 원한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원하는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이 알았으면 한다. 아니,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래야 나의 이 뜨거운 사랑이 비로소 가치가 있다.
"내 사랑을 알아줘.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 지 알아줘. 그리고 그만큼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아니, 그만큼 나를 사랑해야 해."
어린 사랑은 홀로 뜨거워 홀로 타버린다. 타 버린 재에 사랑하는 이의 흔적이 사라진다. 사랑의 불꽃이 그 사람까지 안아주지 못했다. 작렬히 타올랐지만 외로웠고, 성급했다. 그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가 아닌 아픈 화상을 남겼다. 그렇게 어린 사랑은 치열하고 칭얼댔고 외로웠다.
사랑도 나이가 든다. 어릴 적 옳다고 생각했던 사랑의 방법을 의심하게 된다. 여러 경험을 통해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변한다. 단번에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의 사랑이 미성숙했다면 무작정 빛났던, 그래서 뜨거웠고 아팠던, 하지만 그래서 찬란하고 화려했던 봄날이 치기로 덫칠되어 질 것만 같기에.
하지만 우리에게는 감사하게도 세월이라는 마법이 있다. 세월은 화려한 봄날에 보슬비를 내려 추억으로 스멀스멀 젖게 한다. 그 추억과 함께 사랑도 나이가 들고, 성숙해져 간다.
성숙한 사랑은 마음 속 독립된 방을 만든다. 독립되어 있지만 상대가 똑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다. 방 안에는 눈부시고 강렬한 햇빛은 아니지만 은은하고 따뜻한 조명이 빛난다. 그래서 당신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 나의 사랑 방에 당신이 들어와 머물다가 원한다면 언제든 당신의 방으로 돌아가도 좋다. 내가 보고 싶어지면 언제든 또 놀러와도 좋다. 보고싶고, 궁금하지만 함부로 사랑하는 이의 방에 들어서지 않는다. 나의 방, 너의 방이 있고, 내 방에 조용하지만 깊은 사랑을 품는다. 품은 사랑은 점잖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다.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사랑을 함부로 확인하려하지 않아 더 깊은 사랑을 키우기에 집중할 수 있다.
그대와의 인연의 심지가 다해 이별할 수 있다. 그대가 떠나 슬프다. 보고 싶다. 하지만 떠났다고 영영 떠난건 아니다. 품었던 사랑이 내 맘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당신을 기억한다. 만나고, 만지고, 뜨겁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꼭 사랑은 아니었다. 그저 나와 시간을 함께했던 그대가 행복하기를. 살다가 질펀한 진흙길을 걷게 될 때 나와의 추억이 잠시나마 햇살이 되어주길. 그래서 걷는 길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당신이 떠났다 해도, 우리의 인연이 끝을 맺게 되었다 해도 섭섭하지만 괜찮다. 나는 아름답고, 성숙한 기억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사랑방은 연인의 사랑을 뛰어 넘어 보편적 인간의 세계로 점점 확장되고 온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