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썩 괜찮은 실패 파헤치기
"저게 뭐죠?" 여자가 웨이터에게 물으면서 이제 해류를 타고 바다로 밀려 나가기를 기다리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그 엄청나게 큰 고기의 길쭉한 등뼈를 손으로 가리켰다.
"티부론이죠. 상어랍니다." 웨이터가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상어가 저토록 잘생기고 멋진 꼬리를 달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나도 몰랐는걸." 여자와 동행인 남자가 말했다.
길 위쪽의 오두막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TV 음악방송에 아이돌이 나온다. 화려한 조명, 의상, 메이크업, 신나는 음악, 춤, 환한 표정. 아직 앳돼 보이지만 노련한 프로 같다.
근데 잠깐! 그들 뒤로 어두운 무언가가 살짝 비친다. 애써 감추고 싶었겠지만 삐죽삐죽 보이고야 만다.
잠시 화려한 무대를 뒤로하고 백스테이지로 가보도록 하자. 강렬한 조명 이면에 숨겨진 땀, 노력, 눈물, 경쟁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깊숙한 어두운 배경 속 누군가가 있다.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돌 또래의 또 다른 이들. 연습생들이다! 끝내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한. 그들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내가 그들과 같아서. 마땅히 해줄 게 없어서.
얼마나 많은 연습생들이 울고 넘어지고 좌절하였을까.
치열한 아이돌 시장. 연습생이 되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을 보고, 그 횟수만큼 낙방하고 또 다시 도전한다. 마침내 첫 난관을 넘어 연습생이 되었다고 아직 안주할 수 없다. 보컬, 댄스 레슨은 기본이고 외국어 공부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같은 꿈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친구이자 라이벌이 버젓이 함께 뛰고 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치열한 과정이고, 경쟁이다. 몇 년에 걸쳐 뿌연 안갯속, 보이지 않는 길을 열심히 완주했다 해서 모두가 아이돌이란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이가 많아서, 기획 콘셉트와 맞지 않아서, 건강상의 이유로...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난관을 그야말로 운 좋게 넘어야 한다. 운명의 난관을 끝내 넘지 못한다면 꿈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어릴 적부터 간절히 바라왔고, 치열하게 준비했왔던 꿈을 접어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이 작은 불씨가 되고 끝내 모두 전소된다. 희미한 그을음이 된 꿈 많던 연습생들. 데뷔에 성공한 화려한 아이돌의 빛에 가려져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성공만을 기억한다. 반면 성공 뒤에 성공보다 무겁게 적체된 실패는 관심 밖으로 밀려버린다.
그렇다면 실패란 먼 우리의 관심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1. 성공을 재미있게 꾸며주는 실패 스토리
어느 드라마 첫 화에 등장한 주인공은 잘 생기고, 똑똑하고, 인기가 많다. 게다가 운도 좋다. 오케이 좋다. 그럴 수 있다. 처음에는 다 그럴 수 있지. 그런데 2화, 3화, 4화... 회를 거듭하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잘 나간다. 설마 설마 하다가 드디어 마지막 회. 주인공은 마침내, 결국... 더 잘 나가고 성공한다. 이런 드라마, 과연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인기는커녕 혹평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드라마에서 실패 스토리는 필수적이다.
처음부터 잘 났든 아니면 나중에 잘 나가든 그 사이사이에 실패가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하지만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음, 다시 도전해 용을 써봤지만 역시나 실패, 다시 도전, 끝끝내 결국 해내고야 마는 주인공! 이렇게 빌드업되어 완성되는 성공 이야기가 더 값지고 눈부시다. 그리고 재미있다.
우리네 인생이 드라마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우리의 성공 그리고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완벽한 성공을 맛본다면 성공은 시시하다. 이 세상에는 오직 성공만이 존재해 성공에 감사하지 않고 당연하다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실패 끝에 얻는 성공은 달콤하다. 나는 브런치스토리 작가 신청을 총 5번 시도했다. 4번의 고배를 마셨다. 4번의 좌절을 했다. 5수 한 끝에 작가가 되었고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너무 기뻐서 울 뻔했다. 실패 끝에 얻어낸 성공의 맛은 이토록 달콤하다.
2. 폼 나는 자랑
요즘 자기 자랑의 위상이 많이 죽고, 자기 겸허가 미덕이라고 한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너무 반복한다면 그건 실례이니 주의 바랍니다^^) 동생들이나 후배들 밥 사주며 자랑하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 이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잘 살아왔다, 왕년에 화려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행위가 힘든 이 세상 잠시 잊고 웃음 짓게 하니 말이다.
각설하고, 실패는 자랑의 폼을 살게 한다. 어르신들이 한 잔 걸치고 하시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좀 더 격식 있는 자랑을 듣고 싶다면 유튜브 강의도 좋다. 처음부터 나 잘났다고 말하는가. 아니다. 처음에는 이래저래 힘들었다는 이야기로 바닥을 다진다. 그 이후에 글쎄 말이야 내가 내 힘으로 어찌어찌해서 기막힌 활약을 해서 어려움을 극복했고 결국에는 성공을 했다는 자랑의 성을 완성한다. 자랑의 영역에서 실패 없는 성공의 성은 힘이 없어 사람들 머릿속에 힘 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니 실패가 자랑을 돋보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왕 자랑하는 거 폼 나면 좋지 아니한가.
3. 실패가 아닌 실패
실패란 정의하기 나름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죽을힘을 다해서 낚은 월척을 상어에게 뺏기고 만다. 상어에게 뜯긴 월척은 상품 가치가 떨어져 쓰레기가 되고 만다. 실패라고 한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은 여전히 사자의 꿈을 꾼다. 사자의 꿈을 꾸는 순간 그의 실패는 진짜 실패가 아닌 게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무게를 둔 말이다. 열심히 살지만 그만큼 성과가 따라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만큼 섭섭한 말이 없다. 하지만 실패라는 주제에서는 결코 섭섭한 말이 아니다.
모로 가다가 실패한다. 그리고 실패에 주저 앉는다. 그렇다면 모로간 여정이 실패가 된다. 하지만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선다면? 그래서 먼 훗날 서울로 간다면? 실패했던 경험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닌 게 된다. 성공의 과정이 된다. 진짜 실패가 아닌 성공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꼭 필요했던 과정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사자의 꿈을 꾸고 있는 한 실패는 결코 진짜 실패가 아니다.
성공 뒤켠에 숨 죽여 있는 실패라는 존재. 실패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더 빛나는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우리는 실패라는 충분히 값진 경험을 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참 다행이다.
오랫동안 바라왔고 간절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수많은 인생의 연습생들. 가슴에 품었던 꿈으로 성공의 모양을 그대로 두지 말자. 꿈의 펜을 들어보자. 결승점에 찍힌 마침표를 콕 찍어보자. 거기서 펜을 떼지 말자. 힘을 주어 길게 선을 이어보자. 마치 또 다른 꿈의 무대가 마련된 것처럼. 더 큰 꿈과 성공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공간이 드넓게 펼쳐진 것처럼. 힘차게 나아갈 희망 가득한 꿈길 개통을 축하한다.
실패에 묻혀 자책하고, 우울한 이들을 위해 응원하고, 위로해주고 싶은 날이다. 물론 나도 여러분의 응원과 위로가 필요하다. 실패의 동지들, 서로서로 잘 챙겨주고 힘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