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스완보다 먼저 전구의 원형을 생산해 냈던 사람들이 꽤 많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에디슨은 콘크리트 때 그랬던 것처럼, 전구를 양산용으로 개량했다. - 에드 콘웨이 (물질의 세계) -
에디슨은 전구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에디슨 이전에 험프리 데이비와 조셉 스완의 노고가 있었다. 에디슨이 전구의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은 전구의 최초 발명자를 에디슨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대다수는 전구를 누가 최초로 발명했는지의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저녁에도 지나는 길거리와 생활하는 집안이 밝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상식으로 알아두면 그만이다.
하지만 과연 험프리 데이비와 조셉 스완가 후세의 우리가 그들 덕분에 더 편한 일상을 누리면 그만이라는 넓은 아량으로 토머스 에디슨만 기억하는 우리를 기꺼이 축복할 수 있을까? 잠시 내가 그들이 되어 본다. 전구 발명 착안은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엄청난 업적이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위대한 성과를 달성했는지.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토머스 에디슨만이 자리해 있다. 세계위인전집에 토머스 에디슨이 빠지지 않는다. 토머스 에디슨의 가장 큰 업적이 전구의 상용화인데 그 전구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바로 나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섭섭하다. 서운하다.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 내가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꽤나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이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이 몰라준다. 나이가 들면 들 수록 타인은 나에게 더욱 인색해진다. 어릴 때는 조금만 정성을 기울여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칭찬해 줄 사람이 없다.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다 큰 어른에게 어린아이처럼 칭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어색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만약 회사 동료라고 한다면 좋든 싫든 잠재적 경쟁자다. 경쟁자는 나에게 득이 되고 기분 좋은 말을 굳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하니 이해하련다. 하지만 가끔은 좀 섭섭하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마음껏 칭찬을 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 본성을 역행해 착한 사람이 되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날카롭게 튀어나오는 감정과 말투를 꾹꾹 억눌러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유튜브에서 본 스님의 말씀을 기억에서 꺼내 곱씹고 곱씹어 마음을 다스린다. 사람들은 모른다. 그냥 내가 태어나길 온순하고 착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뒤에 꽤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리가 없다. 그것도 모르고 가끔씩 그런 나를 가볍게 보는 사람이 있다. 무례와 장난 그 어느 사이에서 내가 강단 있게 입장을 바로 취해야 하는 건지 갈등하게 한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비롯되었다는 평안하고 평화로운 불교 사상 한 스푼으로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착하게 살려하는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섭섭하다. 나는 본디 착하게 태어나지 않았단 말이다.
내가 만약 슬프고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윤복희라는 원로 가수가 부른 여러분이라는 노래 중간에 나오는 멘트다. 원래 다음의 말은 '여러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바로 나.'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보다 내가 알아주는 게 훨씬 빠르다. 그리고 가장 진심이다.
가만히 보면 사람은 누구나 섭섭하다. 그리고 외롭다. 내가 나를 아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은 결코 알아줄 수 없다. 설사 요목조목 다 알려준다 해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어쩌면 타인이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 수도 있겠다. 그들이 내가 될 수 없기에. 그들이 나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그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렇담 셀프 서비스로 나는 내가 알아주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게 내가 도움을 준 일, 공부한 일, 하루 종일 쏟았던 열정, 힘든 상황 속에서도 루틴을 지킨 근면함을 알아주고 스스로 칭찬한다.
'잘했다 잘했어.'
그렇다면 아무도 몰라주는 게 아니게 된다. 나 자신, 한 명이라도 알아주는 기쁨이 된다.
이왕이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살이란 게 더불어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알아주는 사람을 두 명으로 채워줘야겠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 두 번째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옆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자. 마땅히 내가 알아줄 일이 있다면 마음껏 알아주어야겠다. 그리고 확실한 티를 내야겠다. 그래서 그가 더욱 뿌듯해하고 기뻐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