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는?

한번쯤은 궁금한 본연의 내 모습

by 훌륭한어른이
나는 감정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세. 누구나 감정은 있어. 당연하지. 하지만 만약 '인간은 감정에 저항할 수 없는 존재다'라고 한다면, 그 의견은 결코 수용할 수 없네. 우리는 감정에 지배를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닐세. 그리고 인간은 '감정에 지배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또한 '과거에도 지배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들러 심리학은 허무주의와 대치되는 사상이자 철학이라네.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감정은 강렬하다. 얹짢은 상황에서 화라는 감정은 불쑥 올라온다. 뚜껑이 열린 감정을 분출하고 싶다. 이 세상에 나혼자만 산다면, 내가 이 세상 제일 가는 생물체라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완벽한 존재라면 꾹 닫혀있던 감정의 빗장을 활짝 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인간이다. 억누를 수 있는 화를 굳이 분출해서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 옹기종기 잘 뭉쳐있던 조직에 별안간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 화를 삭인다. 그것이 인간다움이며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나름 잘난 인간의 특징이다.


나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이다. 분노와 짜증 미움을 잘 다스린다. 참 다행이다. 덕분에 다른 사람과 크게 얼굴 붉힐 일도, 보복성 피해를 당해볼 일도 거의 없었다. 촘촘한 인간관계가 얽히고 섥힌 서울 땅덩어리에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특징이 나를 지켜주었다.


내 마음 속에 견고한 울타리가 있다. 그 안에서 감정들이 살고 있다. 참 활발했던 녀석이었지만,(또래들의 것과 비교해 결코 더 활발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은 많이 차분해졌다. 저절로 이루어낸 결과는 아니다. 나름 요녀석들을 잘 길들이기 위해 스님 영상도 많이 보고, 책도 꽤 읽었다. 그래서 예전보다 많이 평화로워졌다. 가끔씩 감정 요소가 예상치 않게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미래에 있을 감정의 도발을 미리 막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전보다 따른 시간 안에 주워담을 수 있다. 마음의 안정을 빨리 되찾을 수 있다.


이런 나를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여기고 싶다. 그런데 사실은 답답하다. 들썩임이 적은 내 마음의 들판. 매번 비슷한 풍경, 비슷한 움직임이다. 나의 평안을 지탱해주던 울타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고마우면서도 걸리적거린다. 저 울타리가 없었다면?


저 울타리가 없었다면 본래의 나와 가까워질 수 있을텐데. 나 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을텐데.

울타리가 없는 진짜 내 모습은 어떨까? 어떤 감정을 드러낼까?


사회적으로 무난한 인간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길들이면서 본래의 내가 희미해졌다. 태초의 나. 원색의 나. 그게 뭔지 모르겠다. 잊어버리게 됐다. 나를 잃고 말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쉽다. 내 전부가 좋든 싫든 진짜 나를 알고 싶다. 외면하고 싶은 모습도 어차피 '나'이니까.


지금의 마음상태가 싫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고맙다. 덕분에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 단지 감정의 다스림이 없는 '나'는 과연 어떤 상태일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 다스림을 제거하기에는 내가 지켜온 것과 내가 노력해온 것들이 아깝다. 혹시 봉인 해제를 한다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어찌 됐든 지금의 나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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