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어두운 나의 진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베르 카위 (이방인) -
이방인의 첫 문장에 황당했다. 엄마의 사망 소식을 전달받은 주인공.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 고민하며 엄마의 죽음을 지나치게 담백하게 읊었다. 처음에 주인공이 크나큰 충격을 받은 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압도적인 슬픔에 현실감각을 상실한 상태에 이르고 만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읽어 내려가면서 주인공이 그러했을거란 가능성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은 냉혈한 똘아이였다.
주인공은 어쩌다 따뜻한 감정이 제거된 차가운 괴물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불쌍한 사람을 보면 저절로 측인지심이 일어나듯, 그는 사랑을 주었던 사람에 대해 절로 온정의 마음이 일어나지 못했겠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과 뇌 작용의 문제이겠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결코 보통 사람처럼 피어나지 못하는 마음. 그래, 어쩌면 살아가면서 주변사람에게 그 마음을 강요 받았을 수도 있겠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릴 적 크나큰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 주인공이 책에서도 밝히지 못했을 만큼 결코 꺼내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가 가슴에 문신처럼 박혔다. 결국 또 다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봉인했다. 마음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마음을 꺼내지 않으면 공격받아 상처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봉인이 익숙해짐에 따라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 최면에 걸리고 말았겠다.
주인공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상상해보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지 못한다 말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인간의 상상과 그와 접목되는 생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간 생각의 예시를 접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거부감은 익숙함므로 바뀔 수 있다. 그 익숙함은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다는 합리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때부터 인간은 혼란스러워진다. 처음 생각이 100% 진리가 아닐 수 있기에, 미세한 틈새 사이를 비집어 비치는 어둠. 그 어둠은 또 다른 어둠의 지렛대로 틈새를 더욱 벌리고 만다. 어둠은 오랜동안 지켜온 빛을 서서히 삼키고 있다.
자! 여기서 봉쇄! 쓰레기 봉투에 넣어 단단히 묶고 쓰레기통에 버리자.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본래 선하고 순수한 존재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교육 받으면서 나란 인간이 다듬어져 왔다. 얼마나 많은 도움이 있었는가. 날 것의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면이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건 나의 존엄과 가치를 폄훼할 일은 아니다. 그런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내 안에 소설 주인공과 같은 차가움과 냉혹함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나만 알아야 하는 어두운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더 가치있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기꺼이 그러 할 수 있다. 그 감수는 결국 자긍심과 보람으로 멋있게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