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탐) 사탐에서 빛나는 상식

상식이냐 암기냐

by 말과맘




1988학년도 학력고사를 치른 저녁 가족이 보는 앞에서 채점을 하는데 사회 과목 점수가 좋지 않았다.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답지가 틀린 거 아니냐며 분위기를 진정시키셨다. 그럴리가 있겠는가. 사회 과목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교 같은 반에 독서를 많이 한 두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서 쉬는 시간에을 재밌게 해주던 친구들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읽었던 책 얘기를 서로 나누곤 했다. 좋았던 책을 서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들의 똑똑함이 천부적인가 생각했었다. 그들을 따라 할 수 없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했었다. 그 친구들은 또한 영화광이어서 반 친구들에게 영화 스토리를 쏟아냈다. 그들이 책과 영화로 상식을 쌓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대전이라는 대도시의 아이들은 촌에서 나와는 무척 달라 보였다.


도서관 구경해본 적이 없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다만 공부 의지가 강했기에 공부량이 더 많았다. 성적이 더 잘 나오긴 했지만, 나는 그 친구들보다 똘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려서 가끔 동화나 소설책을 읽긴 했지만, 세상에 책이 그렇게 많을 줄은 대학에 진학하고서야 알았다. 읽을거리가 없으니 국어 교과서 속 이야기를 외다시피 읽었다. 적은 독서량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시험 범위를 반복적으로 읽고 분석하여 국어 점수는 아쉽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 영역은 문학보다 더 많은 경험과 상식을 요구했다. 내게 없는 것을 평가하는 사회가 어려웠다. TV로라도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접 경험이라도 했더라면 나았을 것을, 나는 TV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았다. 대학이 되어 책에 빠져들어 세상을 알아가면서 덕서가 얼마나 많은 상식을 주는지 알게 되었다. 그 친구들이 책을 많이 읽아 똘똘했음을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공부 좀 한다고 해서 대전이라는 대도시에서 공부해보겠다고 용기를 냈다. 도시의 생활에 무지한 나는 그 당시 택시와 자가용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촌뜨기였다. 도시의 문물이 신기하고 두려운 때였다. 나는 사회 과목이 가장 어려웠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수업을 들었지만 공부를 미루고 싶은 과목 1순위였다. 선생님이 좋아서 공부를 더 하게 만드는 행운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법이 어려웠다. 독서로 간접 경험이 풍부했다거나 현실을 알았다면 더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으로는 금세 실력이 보충 되질 않았다. 국영수가 ‘중요 과목’인 것은 그 당시도 마찬가지여서, 그 과목에 주력하느라 사회 과목에 시간을 내지 못했다. 시험 공부를 간신히 해냈을 뿐이었다. 내신은 그나마 범위가 있고 선생님들의 출제 의도를 따라 암기하면 점수가 나왔다. 하지만 전범위에서 출제되는 학력고사에서는 무지가 탄로가 난 것이다. 초등시절에 세계명작이나 창작동화 시리즈 한 질이라도 집에 있었더라면 나의 어린 시절은 달랐을 것이며 사회가 그렇게 먼나라 이야기로 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독서를 많이 했던 두 친구는 사회와 역사가 쉽다고 말했다. 독서가 준 어휘력과 지식이 이해력을 높여주었을 것이다. 배경지식이 풍부하니 나보다 헷갈리는 부분이 적었을 것이다. 그들이 부러웠다. 영화에서 얻은 현실 감각, 다독으로 인한 배경지식을 공부로 따라가기 어려운 과목이 바로 법률과 사회였다. 나는 가끔 나 자신에 실망하며 공부로라도 이뤄낼 수 있는 소위 중요 과목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에 쫓겨 결국 사회 특히 법 과목을 적절히 준비하지 못하고 학력고사가 다가왔다.


딸들이 어려서부터 공대에 진학할 것이라는 예측이 되었지만 경제와 법, 문화, 지리, 세계사 등에 대한 책읽기를 할 수 있도록 책을 그비해 두었다. 교과서보다 다양한 주제를 독서해두면 시험 준비 기간에 단기 암기를 하지 않아도 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있으면 EBS나 강남 인강, 유튜브에서 그 주제를 검색하여 강사의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학교 시험이 어떻게 출제하는지 학교 선생님들의 출제의도를 파악하는 장점도 있었다.


역사가 재밌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신기해했었다. 역사가 좋다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두 부류였다. 역사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재밌었는데 교과서도 아는 얘기라서 재밌다는 거였다. 스토리로 역사를 접근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또 TV 사극에 빠져본 적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영상으로 예전 사람들의 생활을 보며 그들의 희로애락을 현재의 우리 삶과 결부시켜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내가 아는 역사는 어느 왕이 어떤 업적을 언제 했는지의 연속일 뿐이었다. TV와 책이 역사를 말해준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나였다. 왜 TV를 보지 않았을까 후회한 적도 있었다. 역사에 대해 나는 삐딱하기까지 했다. 개인이 달성한 결과를 어찌 왕이 했다고 하는 것이며, 스토리도 없이 늘 연도와 왕의 이름과 한일을 연결하는 역사에서 현재와 연결할 수 있는 단서를 나는 그때까지 갖지를 못했던 것이다. 내가 역사에 대해 처음으로 즐거워했던 것은 내 아이들이 만화로 한국사 전체를 깔깔거리며 볼 때 같이 나란히 앉아 보던 때였다. 늦었지만 역사를 모르던 무지를 탈피하는 기쁨이 컸다. 자연스레 세계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찾아 읽는다.


공대생인 두 딸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고, 수준을 나선형으로 올려가며 꾸준히 독서한 덕분에 사회 분야라고 해서 다른 분야보다 더 어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어린이 도서 출판사들이 분야별로 교과 연계 도서를 출판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한 권씩 찾아내지 않아도 충분한 읽을거리가 있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현실 경험이 부족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었다. 딸들이 문과내 학과를 산택했다면, 수학 과학의 범위가 문과가 더 적기 때문에 인문 사회 도서를 더 많이 읽었을 것이다. 더 많은 토론을 하고 토론을 하고 글을 쓰고 발표를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시험에서 사회 과목이 그리 어럅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때 한국의 시문학을 영어로 번역하시는 외국인 교수님이 계셨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어려운 시를 번역한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경외감이 들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교수님이 얼마나 많은 한글책을 읽으셨는지 헤아릴 수 있다. 문학을 번역한다고 단순히 문학만 읽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책들을 끊임없이 읽고 계셨다. 누군가의 깊은 전문성의 뒤에는 깊이 있는 독서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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