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후회는 언제나 늦게 후회스럽다

- 그러지 마요. 모두 애썼으니까

by 칠리체리



“우찬이가 동현이 나이로 돌아간다면 언니는 뭘 다시 해 줄 거야?”





더위가 가시고 때 아닌 비가 며칠 동안 내리더니 그 사이에 기온이 바뀌었다. 일 년여 만에 만난 그녀는 깡충한 단발을 하고 나타났다. 우리는 20년 지기다. 별다른 말이 없어도 서로 어색하지 않은 사이다.


"지금 동현이한테 필요한 게 뭘까?”

“내가...? 내가 무슨...”


곤란하고 피해 가고 싶은 질문이다.


“먼저 아이를 키운 선배 말을 듣고 싶어. 길을 잃은 것 같아, 언니.”


길을 잃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길을 잃은 지 나 역시 오래다.



- 여기가 어디예요?

-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모르겠네요. 여기는 그냥 여기예요. 여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였을걸요?

- 뭐가 보이지 않네요. 어딘지 모르겠어요.

- 뭐가 보여야 하는 건가요?


얼버무리듯 답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고 우리는 각자의 차를 마셨다. 그녀는 차가운 아이스라테, 나는 뜨거운 자몽 블랙티. 그마저도 예상에도 없던 단맛에 혀가 차를 거부하듯 밀어버린다.


‘혜정아, 뭘... 해주고 싶어? 뭘 해 주려고 하지 마. 무엇을 안 해줄까를 생각해 보면 더 쉽게 찾을 것 같아.’



나는 늘 아이에게 더듬이를 곤두세우는 엄마였다. 뭘 해줘야 하나, 더 해주지 못한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그런 사람. 하지만 그것은 내 기준이었기에 기준이라는 것은 마음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었다. 누구를 위한 기준이었고 무엇을 해줘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으며 잘 닦아놓은 그 길을 벗어나려고 하면 불안했다. 화가 났고 눈빛이 달라졌다. 자꾸만 채워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전자는 내 이기적 욕심이, 후자는 배려와 존중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꾸 해주려는 엄마보다는 결핍을 알게 해주는 엄마가 될 것이다. 그때의 아이는 고마움보다는 부모의 사랑이 다인 시절이었다. 그걸 모른 채 내심 결과만 기대했다. 이렇게 해주면 안정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실패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거라고. 실패와 후회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고.


엄마의 따뜻한 품과 아빠의 든든한 방패면 되었었다. 결핍에서 길을 모색하고 빠진 퍼즐을 찾도록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딱 맞는 퍼즐을 찾아서 맞췄을 때, 아이가 느낄 성취감과 찬란한 피의 뜨거움을 알려주는 것, 그거면 되었던 것이다.

지나침이 후회하게 만들었고, 정답이라고 확신했던 결과에서 오는 무너짐이 나를 무척이나 시시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채우다가 터져 버렸다.

버리다 보니 그제야 채워야 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어느새 스무 살이 되었다.

잘 컸다.

내가 보기에 잘 컸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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