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라이너 쿤체의 은엉겅퀴 중에서)

by 칠리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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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세상은 견고하다. 고착된 나는 단단한 세상에 끝도 없이 부딪히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각과 사고 속에서 -예측할 수 있었던 계절조차- 궤적을 따라 돌고 있는 나만은 불변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두렵고 익숙해서 괴로운 나는 시시각각 무용하다.





모양새 다른 회기점.

임계점 같은 숨 막힘.

운명 같은 종말은

종말 같은 운명이다.

유기되었고 고아가 되었다.




좀 정신을 차려보자고 눈을 떴을 때 세계는 달라져 있었다. 뻔했던 것들이 뻔하지 않았다. 따뜻한 집, 일상의 밥에 쌓여왔던 익숙한 추억들이 천천히 낯설어졌다.


엄마는 새 학기가 되면 담임에게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보냈다. 2학년 때 담임은 진정으로 나를 예뻐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방울’이라 부르며 - 당시 푸른색 천으로 만든 내 필통에는 방울이 실제로 달려있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미화부장으로 지명했다. 미화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2학년이 끝날 때까지 남들보다 30분 일찍 등교해 칠판에 매일 학습을 적는 일을 했다. 그것이 미화와 어떤 관계가 있었던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3학년이 되었고 엄마는 역시나 담임에게 도시락을 보냈다. 유명한 일식집의 주방장에게 주문한 그것을 받은 담임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쉬는 시간이 아닌 수업 시간, 그러니까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그 고요하고 성스러운 시간에 본능을 받아 들 수밖에 없었던 그 눈빛은 지금까지도 내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검버섯이 피어난 붉은 뺨은 폭발할 것처럼 실룩거렸고 경멸에 찬 눈으로 대상을 조금 비껴 난 눈빛. 고작 10살이었다. 그때의 나는.


안전한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던 감정은 바로 수치심이었다. 이후 그는 내가 나눗셈을 못하는 학습 부진아라는 이유로 수업이 끝난 후 나를 교실에 남겼다. 칠판에 문제를 적어 놓고 한참 후에 돌아와 정답을 확인하고 집으로 보냈다. 그 일 이후 학습 부진아가 교사의 가르침 덕분에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내는 뛰어난 습득자가 되었다. 두 인간이 참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지던 순간이었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을까. 왜 나는 엄마에게 그런 두려움과 수치와 패배와 혹은 자부심을 말하지 못했을까. 우매한 나의 엄마가 도시락을 매년 싸던 이유가 그런 것이었을까?





얼마 전 조명 감독인 H에게 전화가 왔다.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가다 한파가 누그러지면 얼굴 한번 보자고 했다. 끊기 직전 오늘 대화가 매끄럽지 못했던 것은 뜨개질을 하며 통화를 해서라고 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던 동시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분야에서 나름 알려진 H가 겨울 동안 일거리가 없어 손가락을 빨 것 같다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는 것보다 뜨개질을 하고 있다는 말에서였다.


몇 달 전에는 M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동양화가인 그는 매년 전시를 했다. 진심으로 예술가로서의 그의 노고와 아픔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 발걸음을 했다. 와중에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 있었지만 friend price로 달라고 하기에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이상의 값을 쳐주고 싶은 내 친구였으니까. 그가 그린 부유하는 깃털들은 목적이 없는 곳을 향해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통곡하다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같았다. 사실 그 작품을 탐닉했다. 그런 그녀가 나를 보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자신의 생계가 어려워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 장사라도 해야겠다고 말을 했을 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다만 ‘순대와 어묵’까지 더불어 팔면 장사가 더 잘 되겠다며 일손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달려가겠다고 했다. 비아냥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내 마음은 정말 진심이었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 들어서자 수십 개의 문자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중 기다리던 답이 눈에 들어왔다. 지원했던 강사 자리의 알림이었다.


‘다음 기회에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쯤이면 늙고 힘없는 부모와 젊고 희망찬 조카들에게 지갑을 열 수 있을까. 예술이 가난한 게 아니라는 걸 과연 보여줄 수나 있을까.




"예술은

예술가의 맹인 지팡이"


-라이너 쿤체의 [시학] 중에서 - " 시는 시인의 지팡이" 를 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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