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파랗다, 싸늘하다, 서슬 퍼렇다.’ 가브리엘을 본 사람들은 말했다. 표정 없는 얼굴에 들어선 꽉 찬 검은 눈동자는 묘한 느낌과 동시에 싸늘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여과 없는 표현을 퍼부어 댔다. 그녀의 눈에 서리는 기운은 광원을 뚫고 나온 광륜의 빛이었고 선명했다. 옅은 푸른색의 공막은 가브리엘이 가만히만 있어도 독한 아이라는 인식을 주었다.
“너를 가졌을 때 포도를 많이 먹어서 네 눈이 포도 물 든 것처럼 파랗고 예쁘다.”
엄마가 말은 염려였고 우려였고 위로였다.
가브리엘을 힐끗거리며 삐죽거리는 가짜 어른이나 예의를 핑계로 지루한 훈계를 늘어놓는 사람들은 동시에 세상의 슬프고 기쁜 말들을 쏟아냈고 그 대가로 귤이나 티나 크래커 따위를 주곤 했다. 우매한 그들의 치부를 입 밖에 내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가브리엘은 대답 대신 귤을 깠다. 여름의 포도 냄새가 더운 바람을 타고 흘러오던 그 여름은 낮게 날던 순찰 비행기의 웅웅 거리는 무료한 소리, 부엌일을 봐주던 승미 언니가 찬밥에 시큼한 김칫국물을 넣고 밥 비벼먹던 소리뿐이었다.
11살의 11월은 초록색 지붕이 얌전히 내려앉은 작은 성당 마당이 빨간 놀이 기구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가브리엘이 가장 좋아하던 장소였다. 성당 뒷마당에 은밀하게 숨어 있던 작은 공원과 벤치 위 등나무. 초록이 아직 남은 낡은 그네를 타고 있는 가브리엘에게 회색 옷을 입은 한 여자가 다가왔다. 차가운 금색 안경 너머 금색을 닮은 끽끽거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그곳을 드나들 수 있는 자들의 경계를 명확히 짚어주었다.
“성당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그네를 탈 수 없단다.”
첫눈이 내릴 만큼 추운 날씨가 시작되면서 가브리엘은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기도문도 외우지 못했는데 크리스마스 공연을 위한 역할을 맡았다. 가브리엘은 연습시간인 7시를 분명히 지켰고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내심 마리아 역을 맡고 싶었지만-이름이 근사했다-세례명도 없는 처지로서는 군침만 흘려야 하는 자리였다. 결국 그 역할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히 효성이가 선택되었다. 온 가족은 모태신앙이었고 그것이 효성이네 가족의 역사였다. 역사 속에 들어갈 수 없지만 상관없었다. 하얀 박꽃 냄새가 풍기는 마당에서 그네를 타기만 하면 됐으니까.
연극을 올리던 전 날, 마지막 연습 날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 역을 맡은 성심치과 원장의 아들인 규직이의 엄마가 간식으로 보내 준 뜨거운 호빵을 먹었다. 호빵, 아빠의 월급날에만 먹을 수 있던 그 귀한 호빵을 사러 갈 때마다 동그랗게 제일 예쁘게 생긴 것을 고르곤 했던 두근거림이 기억났다. 그러나 그날 그 호빵들은 너무 많은 양에 죄다 찌그러져 팥 혹은 야채만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동작이 굼뜬 가브리엘은 제일 밑에 깔린, 찌그러지고 눅눅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할머니와 엄마는 절에 있을 것이다. 이 12월에 연등을 만들어 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빛내 주었으면 얼마나 으쓱했을까. 그 연등에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축언을 쓰면 나도 마리아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기 전, 그러니까 목구멍에 걸린 마지막 호빵이 넘어가기도 전, 초등 1부 선생님은 나를 재촉했다.
“천사 가브리엘은 신의 소식을 전하는 대천사란다. 하지만 넌 대사를 할 수 없으니까 그냥 관객을 향해서 ‘보라!’라는 손짓만 하면 돼.”
그녀는 창고에서 가지고 온 빛바랜 커튼을 가브리엘의 몸에 칭칭 감았다. 아직 마지막 호빵을 삼키지 못했다. 그녀의 손에는 다만 식지 않은 호빵의 온기만 남아있었다.
꿀꺽, 마지막 호빵을 삼킨 가브리엘은 무대를 향해 올라갔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신의 메시지를 가져온 가브리엘을 본 마리아가 ‘에구머니나!’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바로,
일······ 이······삼,
예측대로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바로 가브리엘이 존재를 드러낼 타이밍이었다. 가브리엘은 부드럽게 날개를 펼치듯 흰 커튼 속의 손을 펼쳤다.
“보라! 나는 대천사 가브리엘로서······.”
198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내일부터 가브리엘은 그 아늑한 놀이터에서 그네와 목마를 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