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의 엄마가 나의 엄마에게

-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by 칠리체리


엄마,

내일 아침엔 열무김치하고 보리고추장 넣어서 된장에 밥 비벼 먹을까?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 먹고 싶어. 멸치하고 호박이랑 양파만 넣어서 자박자박하게 끓여주던 그 된장찌개. 멸치는 있어? 한 줌밖에 없다고?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먹고 시장 갔다 오자. 똥은 내가 따줄게.

에이, 괜찮아. 이제 나도 가시 잘 안 박혀. 잔가시가 더 잘 아프다고 엄마는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나도 내 새끼 먹이려다 보니 멸치똥 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젠 요령도 알아서 제법 잘해. 난, 식당 된장찌개 너무 싫더라, 아니 된장찌개에 뭘 그리 때려 넣는지 된장찌개를 먹는 건지 잡탕국을 먹는 건지 영 정체를 모르겠더라고.



엄마 기억나? 내가 아홉 살인가 열 살 때 우리 같이 올라갔던 금오산 꼭대기 약사암 맞나? 그 절 있잖아. 요즘 거기가 문득문득 생각나. 얼마 전 TV에 한번 나오던데 몇십 년을 까먹고 있다가 그 프로 보는데 옛날 생각이 나더라? 근데 거길 왜 데리고 올라갔던 거야? 꼭두새벽부터 깨워서. 어디 가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 해주고 끌려갔잖아. 아마 그때 엄마 나이가 마흔도 안 되었을 테니까 지금 내 나이보다도 훨씬 어린 거 아냐? 엄만 부처님 앞에서 절만하고. 나는 거기 있는 동자스님이랑 마당에서 놀고 있었던 거 같은데? 반나절 정도 머물다가 보살님이 차려 준 밥 먹고 내려왔잖아.


엄마 근데 되게 웃긴 게 뭔지 알아? 산 내려오면서 내가 그 동자스님한테 ‘우리, 다음에도 또 같이 놀자!’하고 인사까지 했었어. 왜 가고 싶긴, 엄마랑 두고 왔던 막대기 지팡이 찾아보려고 그러지. 그렇지, 말도 안 되지. 그게 벌써 사십 년도 넘었는 데 있겠어? 큰 바위 뒤에다 숨겨놓고 담에 올 때 거기서 찾아 꺼내서 또 올라가자 했잖아. 못 찾겠지? 그럴 거 같아. 너무 많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걸? 재계발한다고 근처 산을 다 밀어서 찾지도 못해. 이제는 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간대. 세상 진짜 좋아졌지? 맞아, 낭만은 없어.


어! 비 오는 소린가? 엄마, 밖에 비 온다! 오늘 푹푹 찌더니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지네. 앗, 깜짝이야. 천둥번개까지 치네. 엄마 딸, 이 나이에도 천둥번개가 아직도 무서워.



엄마 자?

근데 엄마,

예전에 내가 ‘엄마, 엄마 하늘나라 가면, 그때 엄마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물었을 때 엄마가 뭘 그런 걸 벌써 묻냐고 했을 때, ‘엄마가 갑자기 내 옆에서 없어지게 되면 대답을 못해주니까 지금 미리 물어두는 거야’라고 했던 말. 그 대답을 미리 들어둬서 참 다행이다 싶어. 우리 엄마 대답은 진짜 멋진 거 같아.


엄마, 한낮에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마. 어깨 수술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미안해, 엄마.

엄마 딸이 너무 못나서 엄마 아직까지도 일하게 해서...

엄마보다 더 잘 살 거라고 해서 미안해

엄마처럼 답답하고 백치같이 안 살 거라고 막말해서 미안해.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따지듯이 몰아붙여서 미안해.

왜 아빠한테 못 받은 걸 나한테 보상받으려고 하냐며 소리쳐서 미안해.

그럴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럼 좀 어때, 였는데 뭘 그리 핏대 세우고 예민했었는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왜 엄만 다 괜찮대?

내가 좀 별로야, 엄마 딸이 기가 많이 죽어서...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지 모르겠어.

응, 다시 힘내볼게! 엄마가 나를 강하게 키워줬잖아. 괜찮아, 엄마 딸이잖아. 적당히 좀 속고 살고 지고 살면 어때.

아... 엄마랑 이렇게 오랜만에 누워서 얘기하니까 진짜 좋다, 그렇지?

엄마? 나 좀 더 있다 가도 되지?

엄마, 우리 이제 자자, 나 잘래. 자고 싶어. 졸려.

엄마도 잘 자.

내일 봐!




엄마와 저는 서로에게 ‘사과받고 사과하며 용서하고 용서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자식은 부모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셨고, 저는 ‘나는 엄마한테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다’며 당당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돌하게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엄마는 많이 아팠을 거예요.


어느 시절이 흘렀고 또 한 시절이 지나며 엄마와 저는 함께 비를 맞으며 서로의 상처를 씻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를 보듬어주며 함께 잠을 자고 한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 그 행위 속에서 우리는 다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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