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너의 마라탕과 떡볶이와 그리고

아프지 마라 너무 일찍

by 칠리체리

시험 후 일상은 3단계 마라탕으로 시작한다고 했어. 넌 그게 존나 맵다고 했고. 굳이 왜 그렇게 매운 걸 먹냐는 나에게 - 그냥요, 다들 그렇게 먹으니까 뭐.라고 했잖아.

그 후에는 설빙에서 넘칠 때까지 올린 토핑을 먹으며 시험지를 채점한다고. ‘자살각, 미친, 헐’이라는 말을 내뱉는 애들 옆에서 핸드폰을 본다고 했어. 네 마음을 반은 안 것 같았지만 나머지 반은 묻지 않았어. 내 곤란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넌 화제를 돌렸지.

- 텔레그램 쓰는 사용자들은 두 종류예요

-?



우리는 마라탕을 먹고 있었어. 그날 넌 1단계를 먹었고 ‘선생님, 숙취에는 3이죠’라는 네 말에 난 3단계를 먹었어. 너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쩔쩔매는 나와 달리 넌 이미 나를 다 알고 있는듯 했고 난 콧물인지도 눈물인지도 모를 액체들만 하염없이 흘렸어.

텔레그램은 ‘교재를 다운로드하거나 비밀 문자를 주고받는 두 부류들’이라고 했던 것 같아. 우리는 인생 네 컷을 찍었지. 그 후 난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고 넌 네게 가장 익숙하지만 불편한 어딘가로 향했겠지.


그날 이후 나는 마라탕을 먹지 않아. 귓가에 맴도는 네 말만 기억나.

‘끊긴 당면은 꼬리 잘린 도마뱀 같아요. 금방이라도 쑥쑥 자라서 목구멍으로 나올 것 같거든요.’


네가 나에게 마음을 주는지 몰랐어. 밥을 잘 사줘서? 숙제를 안 해와도 눈감아줘서? 서른도 넘은 내가 고작 열 일 곱살인 너의 용기가 멋지다고 해서?

아니, 솔직히 네가 그만둘까봐 그랬어. 너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비열한 태도라고 고백할게. 너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는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었어. 하지만 너도 너무 했잖아. 오늘이 직보인데 너는 오지 않았고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는데 어떻게 너한테만 매달리겠어. 네가 너무 한 거지. 게다가 몇 칠 전, 마라탕과 설빙과 그리고... 내 시간을 너한테 줬잖아.




네가 늘 앉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구나. 학교가 아니니까. 학교라면 네 지정된 자리에 하얀 꽃이라도 놓여있겠지만 이곳은 네 자리가 없으니 어디에 꽃을 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원장도 싫어할 거야. 나는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노점상에서 떡볶이도 순대도 어묵도 사 먹지 않을 것 같다. 노점상이 사라지는 것보다 내가 학원가를 뜨는 게 빠를 것 같고.


‘쪽팔리지는 않게 용돈이라도 달라’는 네 말, ‘시발, 돈 좀 달라고!’라고 울먹거리던 네 얼굴. 어묵꼬치를 바닥에 던져버리던 너. 아무 말 없이 주변 눈치를 살피다 그것들을 다시 주워 양동이에 있는 물에 헹군 다음, 끓고 있던 떡볶이에 넣던 네 엄마.

네가 세상을 닫고 -어쩌면 열고- 너를 보호하는 방법은 이어폰을 끼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몸을 구기고 밤의 한강을 보는 거였을 거야.


‘걘 내가 부를 때마다 피자 냄새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요. 땀 냄새와 곱창 냄새가 뒤섞여 역겹기도 했지만 나를 간보지 않는 걔가 편했어요. 필요에 따라 소환해도 싫은 기색 없이 남은 음식도 줬어요.'


너는 보호받지 못한 냄새와 세상 끝으로 내몰아진 냄새가 났어. 왜 어두운 곳에서 가장 화려한 빛을 발하는 곳을 그토록 찾아다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너보다 어렸구나 나는. 한참이나 어렸구나. 그래서 너무 많이 슬프고 감당할 수 없는 장면들을 동시에 봐버려서 이 공간, 이 장소에 더이상은 머무르지 못할 것 같아.



한 달 후, 널 찾아갔어. 네 앞에는 네가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이 가득하더구나. 근데 너, 이 따위 것들로 좁아터진 이 공간에서 자유롭니?


“이 숨 막히는 곳에서 진즉 날 좀 데리고 나가주지 그랬어! 지금 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어서 정말 만족하고 있는데 제발 와서 쳐 울지들 좀 말라고! 오늘 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볼까, 브루클린으로 가볼까, 아니면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탈까?”


넌 분명 이렇게 소리치고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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