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흐려지는 시간

백내장 이야기

by Grace Hawa

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하루를 열고 닫으며,
우리의 세포와 감정을 동시에 관통하고,
살아 있다는 감각을 조용히 새기던
그 고요한 진동처럼.

그러나 우리는 그 빛이
당연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에 스며들던 햇살도,
저녁 창문에 남겨진 붉은 무늬도
언젠가부터 흐릿하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별일 아닌 듯 흘려보냈다.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빛을 받아들이는
우리 안의 투명한 렌즈가
천천히, 아주 조용히 흐려졌을 뿐이다.

흐려지는 것은, 빛이 아니라 삶의 감도였다


백내장은
우주의 중심이 흔들리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구 공전 속도가
아주 조금씩 바뀌는 것 같은,
느리고 은밀한 질서의 재배치다.

우리 눈 안의 수정체는
망원경의 렌즈처럼,
우주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한 구조로
빛을 굴절시키고, 망막이라는 별 지도에 도달하게 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정교한 렌즈의 투명성이
한 방울씩 흐려지기 시작한다.
성운이 별 사이를 지나가듯,
수정체에 미세한 혼탁이 일고
빛은 방향을 잃고 퍼진다.

그 순간, 우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그대로인데,
그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씩, 안개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을.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시력의 전환


백내장은 종종
“그냥 나이 들어서 그래요”라는 말로 묻힌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그것은 단지
시간이 우리에게 새겨 놓은 연필자국 같은 것이라고.

빛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이 도달하는 궤적과 굴절이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틈 사이에서
아주 다르게 재편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이들은
낮보다 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가로등이 퍼져 보이고,
차량 불빛이 눈을 찌르고,
책 속의 글자들이 번져 보이기 시작할 때,
그들은 문득 느낀다.
내가 걷는 이 시공간의 결이,
어딘가 다르다고.

삶이 우리에게 다시 질문하는 순간


우주는 침묵 속에서 계속 팽창하듯,
우리의 시력도 그렇게 잃어간다.
소리 없이, 무통의 속도로,
그러나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그렇기에 백내장은
두려운 낱말이 아니다.
그건 단지
다시 한 번,
우리의 내부 우주를 정렬할 기회다.

수정체가 혼탁해졌을 때,
의학은 그것을 인공 렌즈로 대체해준다.
그리고 그 렌즈는 마치
별빛을 다시 모아주는 우주의 돋보기처럼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제 무엇을 다시 보시겠습니까?”
“그동안 지나쳤던, 그 섬세한 윤곽들을 기억하시겠습니까?”

빛이 흐려지는 시간은, 삶이 숨 고르는 시간이다


빛이 흐려지는 시간은
무너짐이 아닌 전환이다.
그건 우주가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시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망막이라는 정원 위에
다시금 선명한 빛의 패턴을 새겨 넣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 나의 시야가 조금 흐려졌다면,
그건 삶이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다시 보라.
더 깊이 보라.
이제, 제대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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