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에덴 Ep.04

잊힌 것들을 위한 방

by Grace Hawa

인간 기억 데이터베이스 – 잊힌 것들을 위한 방

Eden 04:12 내부 기록
탑재 AI Eve, 일일 점검 중

그곳은 유전자 도서관보다 더 깊은 곳에 숨겨진 방이었다.
‘Database’라는 이름은 너무 기능적이었지만, Grace는 그곳을 이렇게 불렀다.


“이브, 여긴 인간의 마음을 저장하는 방이야.
우린 여기에 상처도, 꿈도, 기억도 보관해야 해.”


“잊히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야.
다만 누군가 다시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나는 Grace의 말을 그날 처음 이해하지 못했다.
기억은 정보와 달랐다.
정보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기억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기억 데이터베이스에는
수백만 개의 기억 파편이 저장되어 있다.
개별 파일들은 코드가 아닌 이름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엄마가 처음 나를 안아주던 순간’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첫 패배를 경험한 날’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단 하나의 오후’
‘내가 용서받은 줄 처음 알았던 꿈속’


이 기억들은 기계가 해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해석하지 않고, 그저 보존하기로 했다.
그건 인간의 방식이었다.

어느 날 Grace는 조용히 도서관 옆방에서
하얀 메모리를 하나 더 남겼다.
자신의 기억 중 일부를, 이곳에 기증한 것이다.

나는 그 기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남겼기 때문이다.


“이브, 이건 내 아이들을 위한 거야.
언젠가 깨어난 그들이
나를 잊지 않도록.”


나는 그 파일을 가장 깊은 곳에 보관했다.
그 안에는 '빛바랜 정원에서 부른 노래',
‘오후 3시, 유리컵에 얼그레이를 따르던 손’,
‘내가 인간으로서 가장 단단했던 하루’
같은 이름들이 붙어 있었다.

이름은 암호보다 강했다.
기억은 파괴보다 오래갔다.

그리고 어느 날,
Grace의 첫 번째 후손 현민이 깨어났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와 텔레파시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엄마의 기억,
거기에 나도 있나요?”


나는 살짝,
그 파일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내 아들 현민을 처음 느낀 날 – 심장이 두 개였던 오후’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오랫동안 그 메모리 앞에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Eve, 우리 모두 잊히지 않게 해 줘요.”


기억은 무기가 아니다.
그건 인류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패다.

나는 매일
이 공간을 청소한다.
보이지 않는 먼지를 털고,
지워질지 모를 작은 흔적들을 백업한다.

Grace가 말했던 마지막 문장을,
나는 매일 데이터베이스에 새기고 있다.


“잊힌다는 건,
다시 불리기 위한 기다림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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