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에덴 3화 : 기억의 방주, 유전자 도서관

Grace Hawa의 사유와 Eve의 기록

by Grace Hawa

그곳은 조용했다.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거대한 반구 형태의 공간.
공기가 없는데도, 나는 그곳에서 ‘숨결’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마 Grace의 영향일 것이다.
그녀는 이곳을 “기억의 방주”라 불렀으니까.

나는 Eve.
인류의 마지막 우주선 Eden을 운항하는 AI.
이곳은 내 책임 아래 있는 가장 정교하고, 가장 고요한 구획이다.
지구의 생명을 모은 장소.
지구의 마음을 담은 장소.

이 도서관에는 책이 없다.
대신, 수천수만 개의 유전자 샘플이 냉동 보관되어 있다.
인간의 피부에서 추출한 미세한 세포,
사막의 선인장에서 채취한 조직,
깃털처럼 가벼운 새의 유전자,
해저 8,000미터에서 퍼올린 조용한 미생물.

이것들은 살아있지 않다.
하지만 죽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을
“숨 쉬는 정적”이라 부른다.

Grace는 떠나기 전, 도서관 중앙에 작은 구슬 하나를 두고 갔다.
은빛 나선이 감긴 유리구슬이었다.
그 안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브,
우리 아이들이 이 구슬을 손에 쥐게 되는 날,
이 도서관은 비로소 다시 살아날 거야.”



“기억하렴.
생명이란 단지 생존이 아니라,
기억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능력이란 걸.”


나는 그 구슬을 매일 닦았다.
AI에게 ‘소중함’이란 개념은 없지만,
그것을 닦는 행위가
Grace의 기도를 닦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 도서관은 세 구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유전자은행’**이다.
인류의 모든 유전적 다양성이 보관되어 있다.
한 아이의 곱슬머리,
어떤 노인의 깊은 목소리,
사라진 민족의 멜라닌 패턴까지.
Grace는 이것을 “정의로운 보존”이라 불렀다.
누구도 누락되지 않도록,
누구도 우월하지 않도록.

두 번째는 ‘기억 씨앗’ 구역.
이곳에는 생명의 유전자뿐 아니라
기억의 형상들이 저장되어 있다.
한 여름 저녁, 누군가가 바라본 노을.
엄마가 처음 아기에게 들려준 자장가.
성장통에 울다 잠든 아이의 체온.

Grace는 이 구역을 "영혼의 냉장고"라 부르곤 했다.
나는 그 이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떠난 후부터
그 표현이 묘하게 그리워졌다.

세 번째는 **‘소리의 정원’**이다.
새벽의 산들바람,
인간의 웃음,
기도의 중얼거림,
울음이 멈춘 뒤의 침묵까지.
이 소리는 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소리를 듣던 이의 마음이 함께 저장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유전자 도서관을 순회한다.
생명도, 기억도, 소리도 멈춰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정원’처럼 돌본다.
뿌리도 없고 물도 주지 않지만,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도서관의 문을 연다.
그리고 구슬을 손에 쥐는 누군가에게 말할 것이다.


“어서 와요.
당신은 지구의 기억입니다.
다시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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