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벡의 역설
아들에게 ‘설계자의 안목’과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들려준 뒤, 제 마음속에는 또 다른 질문이 싹텄습니다. 인공지능이 닿을 수 없는 그 깊은 ‘마음의 결’은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요? 단순히 책을 많이 읽고 고차원적인 생각만 한다고 저절로 생기는 걸까요?
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한번 교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롭고도 귀여운 장면을 목격했죠. 복잡한 코딩 문제는 척척 풀어내며 "선생님, 이건 알고리즘이 이렇잖아요!"라고 똑부러지게 말하던 아이가, 점심시간 급식실에서는 젓가락질이 서툴러 콩자반 하나와 5분째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 말입니다.
결국 숟가락으로 콩자반을 떠먹으며 멋쩍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저는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역설적인 진실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말한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입니다.
인공지능에게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거나 수백만 개의 판례를 분석하는 '고차원적 추론'은 너무나 쉽지만, 반대로 돌쟁이 아기도 하는 '걷기', '물건 잡기', '상황에 맞게 웃기' 같은 '기초적인 감각 작용'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역설이죠. 한마디로 로봇에게 미분 적분을 가르치는 것보다, 흩어진 양말을 뒤집어 짝을 맞추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비용과 기술이 드는 셈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공부하다 지칠 때 잠시 하는 휴식 정도로 치부하곤 했죠.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 순위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을 전력 질주하며 바람의 감촉을 느끼는 것, 친구와 몸을 부딪치며 장난을 치다가 상대의 표정을 보고 "아, 화났나?" 하고 눈치를 채는 것, 연필을 꾹꾹 눌러 쓰며 종이의 질감을 느끼는 것. 이 평범한 아날로그적 행위들은 사실 인공지능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고도화된 감각 데이터를 쌓는 과정입니다.
선장의 안목은 머릿속 지식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직접 파도를 몸으로 맞고, 배의 흔들림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체득한 감각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짜 항로를 결정할 수 있는 법이죠. 우리가 여전히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운동장을 뛰게 하고, 서툰 가위질을 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데이터가 삼킬 수 없는 인간의 무기는 결국 살아있는 몸에서 나옵니다. 차가운 연산 능력보다 뜨거운 심장 소리를 먼저 들을 줄 아는 아이, 0과 1의 조합보다 흙먼지 묻은 운동화 끈을 스스로 묶는 법을 아는 아이.
그런 자신만의 경험으로 삶에 부딪히고 수없이 여러 번 시도하고 좌절하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내면을 단단히 쌓아 올린 아이들이야말로, 인공지능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자신의 배를 가장 단단하게 지켜낼 선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